입시에 대한 정신적 부담과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 성적표로
인해 마음쓰는 아이를 보면서 문득 "대학속에 인생이 과연 있습니까"라고
묻던 스님이 떠오른다.

심정으로는 그분의 말에 공감하지만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서는 장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나 또한 초연할 수만은 없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순수해야 할 청소년기를 처절한 전쟁과 흡사한
입시준비로 보내야 하는 가여운 아이들.

정말이지 참다운 교육이란 무엇인지 회의하게 된다.

인간으로 태어나 가정이나 학교에서 오랜 시간 교육을 받는 것은 무지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인간의 참된 도리와 덕성을 익히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우리가 태어난 곳의 풍토와 언어, 문화를 정확히 이해하고
건전한 사회기반 위에서 다른사람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의식과 구조적으로 잘못된 교육제도는 오늘날 이땅의
교육이념마저 흔들리게 했고 그 결과 교육은 오로지 삶의 수단으로 전락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것은 결코 자본주의적 사회모순이라고 치부할 일만도 교육부서 혼자
책임지고 개선해야 할 문제도 아니다.

늦었지만 우리도 이제 백과사전식 암기나 컴퓨터처럼 정확한 수리능력만을
필요로 하는 획일적인 교육으로부터 아이들을 해방시켜야 한다.

이세상 모든 아이들이 유능한 학자나 과학자가 될 수는 없다.

반드시 대학을 나와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사람구실을 할 수 있다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와질 때 우리의 소중한 자녀들은 자신의 그릇과 성향에
맞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개개인의 존엄성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성적이나 학벌로 사람의 우열을
가리는 풍토가 개선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의 고통내지 열등의식 위에서나 자신의 성공이 보장되는
불행한 사회를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큰 가지를 휘어잡느라고 몸부림치는 동안 여기저기 상처입는 줄을
의식하지 못하던 외적 성취욕에서 벗어나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왜 가르칠 것인가를 곰곰히 뒤돌아볼 때인 것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