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필름시장을 거의 독식하고 있는 미이스트만 코닥사와 일
후지필름간의 시장쟁탈전은 미일 통상마찰의 단골 메뉴중 하나다.

코닥은 41%, 후지는 34%씩 각각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면서 서로
불공정행위자라며 아웅다웅이다.

코닥은 특히 지난해 6월 후지필름을 상대로 독점금지법 위반에 따른
통상법 301조의 발동을 미 무역대표부 (USTR)에 요구했다.

이에따라 미 정부가 의회가 나서 올해초 후지필름에 대한 제재에
착수할 움직임을 보이자 코닥은 느닷없이 "근원적 사태해결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회사성명을 발표, 상황을 우습게 몰고 갔다.

제소당사자가 발뺌해버려 한창 으름장을 놓던 미정부만 머쓱한 꼴이된
것이다.

코닥이 후지필름을 갑자기 응원하고 나선데는 "근원적 사태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다.

코닥은 후지필름 캐논 니콘 미놀타 등 일본의 필름, 카메라제조업체
4사와 함께 "APS(차세대사진시스템)"라는 새로운 표준규격 제정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지필름이 통상법 301조를 맞게해 일본시장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는 것 보다 APS개발에 차질을빚지 않는게 코닥측으로서는
더 중요했다.

표준획득을 위해선 하루아침에 적이동지로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들 5사는 APS개발에 5년동안 공을 들여 공동규격을 마련한뒤 지난
4월 이 규격에 맞는 필름과 카메라를 일제히 발표했다.

APS규격에 따른 필름은 기존 35mm의 폭을 24mm로 25% 줄였다는게
외형상 특징이다.

또 필름통도 종래의 롤방식에서 카트리지방식으로 개선했고 필름
끝부분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고안했다.

이에따라 필름을 손쉽게 장착할 수 있어 필름 장착과정의 손상이
거의 없고 촬영도중에 필름을 마음대로 갈아끼울 수 있다는게
ASP개발업체들의 주장이다.

필름을 소형화했기 때문에 카메라도 그만큼 소형화가 가능하다.

실제로 캐논이 ASP규격에 맞춰 내놓은 신제품 "IXY"는 담배갑 크기
정도의 초소형카메라다.

필름표면에 투명한 자성체를 입혀 각 컷마다 날짜 시각 등의 정보를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도 큰 특징중 하나다.

여기에는 촬영할 때 빛의방향이나 양,플래시 작동유무 등도 기록돼
나중에 현상.

인화할 때 최적의사진이 나오게 작업하는데 참고로 쓰인다.

APS 개발업체들은 이같은 장점을 갖춰 "간단.확실.경량"이라는 세가지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자평한다.

또 앞으로 5년내 세계필름 및 카메라시장의 30%이상이 APS규격으로
대체된다는게 이들의 전망이다.

그러나 아직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카메라전문가들 사이에는 "같은 재료의 필름을 소형화했다는 것외에
특별히 나아진 점을 발견할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크게 나이진게 없는데 왜 기존 카메라와 전혀 호환성이 없는 규격이
나왔느냐는 불평도 적지 않다.

일본의 현상소들은 "35mm필름을 현상원가는 1장에 4엔인데 ASP규격필름은
50엔이나 든다"면서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기존형식으로 소형 컴팩트카메라가 대중화되어 있고, 필름 없이도
고선명 화질을 쉽게 담을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가 최근들어 각광을 받고
있는 것도 ASP 개발업체들에게 큰 부담이다.

ASP는 근본적으로 수요자의 욕구변화를 계기로 탄생한 표준규격이
아니다.

공급자들의 필요에 의해서 공급자들 스스로 설정한 표준이다.

코닥 등 5사는 세계 필름과 카메라시장이 90년대 들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자 그다지특기할 만한 기능이나 혁식성이 없는 규격을 내놓고
강압적으로 소비자들의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 필름과 카메라시장은 현재 포화상태에 있어 업체들간 출혈경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필름수요는 지난 92년부터 가파른 내리막 길을 걷고 있고, 카메라
판매량도 90년 보다 15% 정도나 줄어 대부분의 카메라 전문업체들이
적자상태에 빠져 있다.

ASP 개발업체들은 모두 세계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높은
지배력을 갖고 있다.

이들은 ASP를 "구원의 신"이라고 부른다.

앞서 표준을 제창하면 나머지 군소업체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필름 및 카메라시장의 새로운 표준을 둘러싼 전쟁은 독과점형 강자연합과
무차별 다수 대중들간 싸움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