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청 항만청등 12개 정부부처에 분산돼있는 해양수산업무를
통괄하기위해 해양수산부가 신설된 만큼 부처간 알력과 비효율을
극복하고 책임있는 해양정책을 집행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초대 해양수산부장관에 발탁된 신한국당 신상우의원은 "어제(7일)저녁
청와대로부터 중요한 업무를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이같은 포부를
피력한뒤 "우선은 12개부처에 흩어져있는 업무를 조화롭게 통합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가 신설부처인만큼 행정력보다는 정치력과 추진력을 가진
정치인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나름대로의 발탁배경을 점치면서
신장관은 "국회에서 정부를 비판하던 적극적 자세로 해양입국의 초석을
놓는데 촉배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지역구의원과 장관을 경임하게돼 힘들지 않겠냐는 질문에 그는 "정치인도
행정업무를 충분히 수행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
욕구"라며 의욕을 보였다.

신장관은 8일 청와대의 임명발표가 있은 직후부터 오후 내내 국회의원
회관에서 수산청 항만청 관계자들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등 사실상의
"집무"를 개시했다.

<< 프로필 >>

신임 신장관은 문민정부의 첫 국방위원장을 지낸 언론계출신의 민주계
7선의원.

그는 자민련 김종필총재(8선) 박준규최고고문(9선)에 이은 국회
최다선의원으로 주요당정개편때마다 하마평이 나돌았으나 국회국방위원장,
정보위원장등을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관운이 적었던 편.

그가 초대 해양수산부장관에 발탁된 것은 지역구가 항도 부산이라는 점과
해양수산부가 각부처에 분산된 여러가지 해양수산업무를 통합한 만큼
정치력있고 비중있는 인물을 고르다보니 최다선의원이고 국회정보위원장을
지낸 그의 경력을 높이 산것이 아니겠느냐는게 대체적인 분석.

그는 5공당시 제1야당이었던 민한당 탄생의 산파역을 맡아 야당실력자로
부상했으나 12대 총선때 오히려 이점이 약점으로 작용,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후 민추협에 가담, 민주화운동에 가세하면서 13.14.15대에 내리
당선하는등 재기에 성공.달변에 정치력도 만만치 않다는 평.

<>경남 양산(59)
<>고대 정외과
<>부산일보기자
<>8~11,13~15대의원
<>국회 국방위원장.정보위원장

< 박정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