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시에서 북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감문면 문무리의
효진이네집에는 효진이(15) 부모님과 동생외에도 개 두마리가 함께
산다.

한마리는 진돗개의 피를 받은 토종견으로 순한 편이지만 앙칼진
데가 있다.

다른 한마리는 원산지는 캐나다이고 고향은 뉴질랜드인 래브라도
리트리버.

"완다"라는 이름의 이 래브라도는 누가 보아도 호감이 갈만한 개다.

덩치는 진돗개보다도 훨씬 큰데도 온순하고 착해서 짓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늘상 져주는 아량을 보여 개들끼리도 싸우는 법이 없다.

사람에게 인품이 있듯이 개에게도 "견품"이 있다고 한다면 완다야
말로 높은 견품을 가진 개다.

완다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되고 있는 개를 이용한 심리치료를
위해 지난해 12월 효진이네로 분양된개로 현재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3년전 효진이네가 구미시에 살때 초등학교 5학년이던 효진이는
"학원폭력" 때문에 충격을 받아 대인기피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게 됐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제쳐두고 아예 학교를 나가지 않게 되자 두어달
뒤 온가족이 벽촌인 문무리로 옮겨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급우에게 맞는 일이 생기면서 불면증과 대인기피증이
재발하고 말았다.

서울로 병원을 다니던중 면담내용을 검토하던 숭실대의 교수가
효진이가 개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에 착안, 중앙개발에서 기르고
있는 래브라도 한마리를 알선해줬다.

놀라운 것은 일주일도 못돼서 효진이의 불면증이 사라지고 사람을
보고 숨는 증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시 중앙개발의 PAT(심리치료용 애완견) 담당자가 효진이에게 주문한
것은 완다를 효진이가 책임지고 조련시키라는 것.

먹이주는 것도 목욕시키는 것도 효진이가 알아서하고 개가 사람처럼
알아서 깨는 것이 아니므로 아침 일곱시면 완다를 깨워 운동을 시킬 것
양치시킬 것 털을 빗어줄 것 등등.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효진이가 워낙 완다한테 반한데다 완다도 잘따라서 토끼
사냥에도 데리고 나가고 마냥 함께 뛰노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보니 저녁때 일찍 자게 되고 말이 없던 아이가 말도 많이 늘었다.

"봄방학이 지나고 새학기가 시작될 무렵이 되자 효진이가 교복을
맞춰야겠다는 얘기를 하데요".

부친 이덕준씨(44)의 말이다.

효진이는 현재 합기도도장에도 6개월째 나가고 있고 학교도 빼먹지
않고 다니는 등 사회성을 완전히 회복한 단계에 이르렀다.

학교에서 성적도 상위권에 들고 있다.

완다에게 할애해 주는 시간도 많이 줄었다.

다른 아이들과 놀아야 하기 때문이다.

완다도 어린 주인의 명령중 어떤 것은 무시할 정도가 됐다.

"기다려" "기다려"해도 "갸우뚱"하곤 한다.

목욕시키기 먹이주기 등 완다를 돌보는 일은 이젠 대부분 효진이의
어머니 육귀순씨(43)의 차지다.

효진이와 완다의 사례는 심리치료에 애완견이 성공적으로 도입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외국에서는 개 외에도 토끼 고양이 새, 심지어는 실험용 쥐까지도
이와같은 용도로 쓰이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막 시작단계다.

중앙개발측은 이리보육원 삼성보육원 농아들을 위한 "가난한 마음의
집" 국립정신병원 등 6곳에 11마리가 분양돼 있으며 숭실대 원광대의
사회복지학과에서 "사회복지시설거주자들의 애완견을 매개로 한
치료효과"를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 채자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