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작가 두사람의 새 장편소설이 나란히 출간됐다.

94년 "녹두장군" (전 12권)을 완간한 송기숙씨(61)의 신작 "은내골 기행"
(창작과비평사 간)과 지난해 대하장편 "화척" (전 5권)을 내놓은
김주영씨(57)의 "야정" (전 5권 문학과지성사 간)이 그것.

두 작품 모두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민초들의 아픔을 농익은 문체로
담아냈다.

"은내골 기행"은 70년대초 민청학련사건과 6.25때 이 마을에서 일어난
학살사건을 대비시켜 분단현실의 아픔을 그린 작품.

민청학련 관련자들의 재판이 한창이던 70년대에 전직 신문기자 명호는
전쟁통에 없어진 선돌이 은내골에 나타나 마을사람들과 잔치를 벌이는
사진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달려간다.

이곳에서 그는 화가 선경을 만나게 되고 인민위원장이었던 한몰댁의
남편 김동춘이 간첩으로 내려왔다 진국사스님으로 위장해 있다는 등
엄청난 비밀을 접한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행방불명된 선경을 찾다가 어디론가 연행된다.

공안당국에서는 간첩 김동춘사건과 민청학련사건을 연결해 엄청난
일을 준비한뒤 이들이 은내골에서 김동춘의 가족과 회합을 가졌다며
간첩으로 몰아간다.

결국 둘은 "뼈가 휘어지는" 고문끝에 허위자백을 하고 "빛밝은
세상밖으로" 나오지만 선경은 돌이킬 수 없는 정신질환에 시달린다.

작가는 과거 자신의 체험을 되살린 이 소설에서 "당시의 현실과
20여년전의 비극 사이에 본질적으로 무엇이 달랐는가"라고 묻는다.

"야정"은 구한말 고향을 떠나 황량한 만주벌판에 삶의 터전을 마련해야
했던 유민들의 이야기.

작가 특유의 걸쭉한 입담과 맛깔스런 우리말이 어우러져 소설읽는
재미를 더한다.

평안북도 강계땅 홍전백의 집.

노복 최성률은 아내를 겁탈한 뒤 자신마저 죽이려 드는 주인 홍전백을
피해 압록강 건너 이역땅으로 도망친다.

그를 도와준 사람은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내던 홍전백의 무남독녀
소혜.

홍전백일가가 풍문을 좇아 압록강을 건너다 비적들에게 살해되고 혼자
살아남은 소혜는 성률과 재회해 결혼한다.

간민촌의 촌장이 된 성률은 후사를 잇지 못해 비관하던 소혜가 자결하자
들짐승처럼 만주땅을 떠돌다 자기대신 간민촌의 촌장 노릇을 한 탓에
청나라에 압송된 장종구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의 희생으로 방면된 종구는 다시 간민촌의 촌장이 되어 새로운 희망의
씨를 뿌리며 세상과의 힘든 싸움을 시작한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