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지구촌 여기까지...] (4) 경남기업 스리랑카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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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의 섬나라 스리랑카는 끝없이 이어지는 백사장과 야자나무, 그리고
방갈로호텔을 앞세워 이방인들을 유혹해왔다.
그러나 민족독립국가를 외치는 ''타밀호랑이''의 끊임없는 폭탄테러위협이
이 섬나라를 휘감으면서 인도양의 평온과 낭만은 남의 것이 돼버렸다.
대신 1인당 국민소득이 700달러정도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의 모습만
우리에게 투영되고 있다.
이같은 이미지는 수도 콜롬보시에서 대통령궁과 가까운 중앙은행건물이
폭탄테러로 망가진 금년초 이후부터 더욱 진해지고 있다.
콜롬보시에는 자살폭탄조의 공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건설업체로 단단히 뿌리 내린 한국기업이 있다.
바로 경남기업이다.
지난 79년 정부의 율산건설 정리방침에 따라 스리랑카공사를 인계받으면서
이 섬에 상륙한 경남기업은 정부청사 증축 주택개량 수로 도로등 닥치는대로
공사를 따내면서 스리랑카에 튼튼한 아성을 구축했다.
경남기업 스리랑카지사는 최근 도로인프라건설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 곳 도로는 옛날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 전부인데다 그동안
개보수도 시원찮아 도로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실정입니다"
(류근석 경남기업 차장)
포장 잘된 도로를 보면 십중팔구 경남기업이 손을 댄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는게 류차장의 설명이다.
경남기업은 요즘 스리랑카 기간도로 중의 하나인 남부의 85km 해안도로를
만들고 있는데 내년 9월께 완공할 예정이다.
작년 9월에 시작된 이 공사는 옛날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길"을
도로로 개보수하는 것이다.
이 도로공사 현장은 콜롬보에서 남쪽 해안을 따라 자동차로 5시간을
달려야 만나는 마타라시를 기점으로 스리랑카 최대의 염전지대인 함반토타
에서 끝난다.
"아예 새 길을 닦는 것이 훨씬 쉬울지 모릅니다"(유차장)
사람과 매연을 뿜어대는 고물 자동차에 코끼리까지 무질서하게 지나가고
있는 "길"에 달라붙어 도로를 건설하자니 고충이 남다르다는 말이다.
여기에 보상금을 타낼 목적으로 여차하면 중장비의 울림이 컸다는 등의
시비를 걸어오는 길가 주민들의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공사를 더디게 할
때가 많다.
공사현장에서 느끼는 "문화적 충격"도 대단하다.
한 예로 불교의 나라인 이 나라에선 보리수나무 때문에 설계도가 바뀌기
일쑤다.
보리수 나무를 옮겨 심는 것이 금기시돼 있어 왕복 4차선 계획이 나무
있는 지점에서만 2차선으로 좁아지는 현장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도 스리랑카에서의 공사가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는게 이성실스리랑카
지사장의 말이다.
그는 내륙도로 80km 공사도 곧 착공하게 돼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3,000km에 이르는 스리랑카의 옛날 식민지 길 중에서 4분의 1
가량을 경남기업이 다시 도로로 만들어 놓는 셈이 된다.
또 진행중인 공사분까지 합하면 경남기업이 지난 79년 진출 이후 수주한
총공사대금은 4억달러에 달한다.
사실 스리랑카에는 아직까지 경남기업 외엔 "건설업체"라는 명함을
내밀만한 현지 업체는 아예 없다.
외국건설업체도 이름없는 중소업체가 몇개 거론될 정도다.
이처럼 스리랑카에서 "건설=경남기업"의 등식이 굳어지기 시작한 것은
이 나라의 피비린내 났던 역사속에 경남기업의 희생과 흔적이 함께 묻혀있기
때문이다.
"88년을 전후해 극좌파들이 스리랑카를 공포분위기로 몰아갔습니다"
인민구제전선(JVP)이라는 공산주의 무장세력이 떼지어 다니며 해방구를
선언하고 외국기업의 공사현장에까지 나타나 중장비에 불을 지르는 무법천지
였다는게 이곳에 온지 10년이 넘는 심진섭이사의 회상이다.
내전상황으로 치닫는 공포분위기에 밀려 독일과 영국 건설업체들이 황급히
철수했고 대기업으로서는 경남기업만 남게됐다.
마지막까지 중장비 철수를 미루고 있던 경남기업도 직원 한명이 희생당하는
한계상황에 직면했고 한편으로 경남 근로자의 희생소식을 접한 스리랑카정부
의 위기감도 극에 달했다.
경남이 철수하면 뒤쫓아 철수해야 된다는 것이 그때까지 남아 있던 외국
기업들의 공통된 정서였을 정도였다.
경남의 철수는 스리랑카 "경제의 파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경남기업측은 먼저 희생에 대한 보상과 더불어 철저한 테러진압을 스리랑카
정부에 요구했다.
외국기업이 몽땅 철수할 조짐을 보이자 결국 스리랑카정부도 JVP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개시했다.
그후 경남사람들은 최근의 타밀호랑이 공포쯤은 별것 아니라는 분위기다.
외국업체들이 투자환경을 탓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경남기업이
이 섬나라 곳곳을 헤집고 다닐수 있는 것은 스리랑카의 역사속으로 들어가
완전한 현지화를 달성했기 때문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2일자).
방갈로호텔을 앞세워 이방인들을 유혹해왔다.
그러나 민족독립국가를 외치는 ''타밀호랑이''의 끊임없는 폭탄테러위협이
이 섬나라를 휘감으면서 인도양의 평온과 낭만은 남의 것이 돼버렸다.
대신 1인당 국민소득이 700달러정도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의 모습만
우리에게 투영되고 있다.
이같은 이미지는 수도 콜롬보시에서 대통령궁과 가까운 중앙은행건물이
폭탄테러로 망가진 금년초 이후부터 더욱 진해지고 있다.
콜롬보시에는 자살폭탄조의 공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건설업체로 단단히 뿌리 내린 한국기업이 있다.
바로 경남기업이다.
지난 79년 정부의 율산건설 정리방침에 따라 스리랑카공사를 인계받으면서
이 섬에 상륙한 경남기업은 정부청사 증축 주택개량 수로 도로등 닥치는대로
공사를 따내면서 스리랑카에 튼튼한 아성을 구축했다.
경남기업 스리랑카지사는 최근 도로인프라건설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 곳 도로는 옛날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 전부인데다 그동안
개보수도 시원찮아 도로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실정입니다"
(류근석 경남기업 차장)
포장 잘된 도로를 보면 십중팔구 경남기업이 손을 댄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는게 류차장의 설명이다.
경남기업은 요즘 스리랑카 기간도로 중의 하나인 남부의 85km 해안도로를
만들고 있는데 내년 9월께 완공할 예정이다.
작년 9월에 시작된 이 공사는 옛날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길"을
도로로 개보수하는 것이다.
이 도로공사 현장은 콜롬보에서 남쪽 해안을 따라 자동차로 5시간을
달려야 만나는 마타라시를 기점으로 스리랑카 최대의 염전지대인 함반토타
에서 끝난다.
"아예 새 길을 닦는 것이 훨씬 쉬울지 모릅니다"(유차장)
사람과 매연을 뿜어대는 고물 자동차에 코끼리까지 무질서하게 지나가고
있는 "길"에 달라붙어 도로를 건설하자니 고충이 남다르다는 말이다.
여기에 보상금을 타낼 목적으로 여차하면 중장비의 울림이 컸다는 등의
시비를 걸어오는 길가 주민들의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공사를 더디게 할
때가 많다.
공사현장에서 느끼는 "문화적 충격"도 대단하다.
한 예로 불교의 나라인 이 나라에선 보리수나무 때문에 설계도가 바뀌기
일쑤다.
보리수 나무를 옮겨 심는 것이 금기시돼 있어 왕복 4차선 계획이 나무
있는 지점에서만 2차선으로 좁아지는 현장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도 스리랑카에서의 공사가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는게 이성실스리랑카
지사장의 말이다.
그는 내륙도로 80km 공사도 곧 착공하게 돼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3,000km에 이르는 스리랑카의 옛날 식민지 길 중에서 4분의 1
가량을 경남기업이 다시 도로로 만들어 놓는 셈이 된다.
또 진행중인 공사분까지 합하면 경남기업이 지난 79년 진출 이후 수주한
총공사대금은 4억달러에 달한다.
사실 스리랑카에는 아직까지 경남기업 외엔 "건설업체"라는 명함을
내밀만한 현지 업체는 아예 없다.
외국건설업체도 이름없는 중소업체가 몇개 거론될 정도다.
이처럼 스리랑카에서 "건설=경남기업"의 등식이 굳어지기 시작한 것은
이 나라의 피비린내 났던 역사속에 경남기업의 희생과 흔적이 함께 묻혀있기
때문이다.
"88년을 전후해 극좌파들이 스리랑카를 공포분위기로 몰아갔습니다"
인민구제전선(JVP)이라는 공산주의 무장세력이 떼지어 다니며 해방구를
선언하고 외국기업의 공사현장에까지 나타나 중장비에 불을 지르는 무법천지
였다는게 이곳에 온지 10년이 넘는 심진섭이사의 회상이다.
내전상황으로 치닫는 공포분위기에 밀려 독일과 영국 건설업체들이 황급히
철수했고 대기업으로서는 경남기업만 남게됐다.
마지막까지 중장비 철수를 미루고 있던 경남기업도 직원 한명이 희생당하는
한계상황에 직면했고 한편으로 경남 근로자의 희생소식을 접한 스리랑카정부
의 위기감도 극에 달했다.
경남이 철수하면 뒤쫓아 철수해야 된다는 것이 그때까지 남아 있던 외국
기업들의 공통된 정서였을 정도였다.
경남의 철수는 스리랑카 "경제의 파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경남기업측은 먼저 희생에 대한 보상과 더불어 철저한 테러진압을 스리랑카
정부에 요구했다.
외국기업이 몽땅 철수할 조짐을 보이자 결국 스리랑카정부도 JVP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개시했다.
그후 경남사람들은 최근의 타밀호랑이 공포쯤은 별것 아니라는 분위기다.
외국업체들이 투자환경을 탓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경남기업이
이 섬나라 곳곳을 헤집고 다닐수 있는 것은 스리랑카의 역사속으로 들어가
완전한 현지화를 달성했기 때문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