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욱 < 한국이동통신 사장 >

6.25 전쟁으로 온 나라가 파괴되어 내일을 점칠 수 없는 위기 속에서도,
나는 매일 들르곤 하던 장사동 라디오 부속품 시장에 못가게 된 것이 정말
아쉬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6.25전쟁은 내게 최신 미군 통신 장비를
선보였다.

전쟁이 일어난 뒤 후퇴를 거듭하던 우리 군은 연합군(UN)의 개입으로 반격
끝에 그해 9월28일 서울을 수복하였다.

그 무렵 나는 우연히 거리에서 인민군이 버리고 간 것으로 짐작되는 소련제
무선기 한대를 주웠다.

뜻밖의 횡재(?)를 한 나는 이 무선기를 놓고 러시아어로 표기된 부품들을
어림으로 추적하였다.

회로도를 그려 놓고 보니 단파 송신기였다.

몇달이 지난 뒤에 서울을 버리고 피란을 가야 할 목전의 운명도 모르고
즐거워 했던 그 체험을 나는 지금도 자랑삼아 얘기한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시작된 1951년 정초의 1.4후퇴는 서울의 주인을 다시
바꾸었다.

서울을 사수한다는 말을 믿었다가 혼이 났던 사람들은 너나없이 남부여대해
정처없는 피란길에 올랐다.

우리도 외가가 있는 경기도 장호원으로 피란을 갔지만, 얼마 안되어 휘문이
부산에 피란 교사를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으신 부모님의 성화로 나는 결국
피란 수도 부산에 당도했다.

대청동 산마루 턱 판자집 피란 학교에 등록을 마친 나는 전쟁이 가져온
불안도 잊은채 소문에 듣던 국제시장 안 무선 부속품 상점을 찾아나섰다.

한동안 뜸했던 취미 활동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마침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듯한 고장난 슈퍼 헤테로다인 수신기를
입수해서 천신만고 끝에 기능을 살려 해외 방송과 아마추어 무선을 청취할수
있게 되었다.

또 이러저런 사연으로 알게 된 한 미군 장교로부터 미국의 아마추어 무선
잡지인 "QST"나 "CQ"를 얻거나, 일본에서 들어온 "무선과 실험"같은 잡지를
빌려 볼수 있었다.

내 영어 일어 실력으로도 회로 도면을 참고하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수
있었다.

내 일생에 처음 전파를 발사한 체험을 실토해야겠다.

용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보병 휴대형 무전기 BC-611/SCR-536 2대를
친구와 함께 구입한 나는 학교 숙제의 답을 서로 맞추어 보기 위해 교신을
하였는데, 이것이 그만 전파감지 기관에 적발된 것이었다.

초단파를 쓰는 지금의 휴대형 무선기와 달리 BC-611은 단파(3.888MHz)를
썼기 때문에 생각보다 멀리 전파가 나간 것이었다.

BC-611은 지금은 무선 호출기나 핸드폰 회사로 더 알려져 있는 모토롤라사
의 전신인 갈빈(Galvin)제조회사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핸디토키"라는
이름으로 생산한 무전기이다.

"전투(Combat)"라는 미국의 TV드라마속에 내가 전쟁중에 가지고 놀던
무전기를 발견하고 혼자 가슴이 설렌 것은 바로 그때의 생생한 추억 때문
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RCA, WE(Western Electric), GE(General Electric)
등 대부분의 통신용및 아마추어용 무선 기기 메이커는 그 제조 기술을 활용
하여 대부분 군용 무선 기기 생산에 참여했다.

갈빈사의 경우만 해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BC-611을 약 4만대 가량 생산
했으며, 다른 회사가 생산한 것까지 합치면 그 수량은 수십만대에 이른다.

그 가운데 한 회사인 핼리크랩터스사의 역사는 우리 통신기기 제조업체들이
관심을 가질만 하다.

제1차 세계대전 전에 아직 고등학생이던 핼리간(Bill Halligan)은 스스로
만든 스파크 방식 송신기로 파장 2백m 밴드에서 전파를 마구 발사하곤 했다.

이 때문에 보스턴 지구 해군 통신소는 교신에 적지 않은 방해를 받았다.

대전 후에 그는 보스턴및 뉴욕 지구의 해군및 해병대 통신 업무에 종사
했으며, 군용 무선 기기를 운용하는 한편 아무추어용 무선기의 개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31년께의 경기 불황중에 시카고에서 한 회사의 대리인이 된 그는 고성능
아마추어용 기기의 개발에 의욕을 보인 끝에 스카이 라이더(Sky Rider)라는
수신기에 이어 11구 슈퍼 헤테로다인 통신형 수신기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들의 뛰어난 성능은 "핼리크랩터스"라는 이름을 아마추어 무선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30년대는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수신기나 송신기를 스스로 만드는 시대
였지만, 핼리간은 수신기에 이어서 아마추어용 대출력 송신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1백W 이하의 송신기는 시판 부품을 사용할수 있지만, 1백W이상의 대출력
송신기는 특수 부품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시는 아마추어 무선사가 아니면
송신기 개발이나 운용을 할수 없었다.

핼리간은 1938년 아마추어 송신기를 완성하고 "HT-4"라 명명했다.

이 송신기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했는데 외장의 재질에 알루미늄
대신에 자동차용 철판을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강건한 외장은 뒤에 군용으로 채택되어 전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뒤에 HT-4송신기는 아마추어용으로도 생산하게 되었다.

1941년 8월 어느날, 핼리크랩터스사의 젊은 경영자 핼리간을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 사람은 사무실에 놓여 있는 HT-4를 가리키며 그것을 군사목적으로
대량 생산해 주기를 부탁했다.

이 주문에 의해 미군용 이동 송신기로 정식 채택된 것이 바로 BC-610이다.

BC-610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유럽 아프리카 태평양 등지의 전선에서
대활약을 했으며, 대전 후에는 주파수 안정도와 음질이 뛰어나 일반 방송용
이나 아마추어 무선용으로도 인기가 높았다.

특히 전후에 풍부한 부품류 때문에 아마추어 무선사들의 애용품이었다.

뒤에 말하지만 나도 BC-610과는 밀접한 인연을 갖고 있다.

BC-610과 한국의 인연은 각별하다.

한국전쟁 당시 미 군사 고문단의 일원인 홀즈워드(James Houldsworth)의
회고에 의하면, 그들은 몇대의 BC-610과 2조의 SCR-399를 보유하고 있었다.

SCR-399는 BC-610과 2대의 BC-324 수신기를 운용, 탁자와 함께 셸터속에
실장한 시스템으로, 1949년에 한국에서 철수한 미 육군으로부터 인계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을 전세계에 알린 것도 서울과
도쿄간에 SCR-399로 구성된 긴급 송신 링크였으며, 한강 다리가 폭파된
이틀후 강북에서 대량의 통신문을 처리한 것도 SCR-399였다.

이 2조의 SCR-399는 북한군에 밀려 부산 주변에 머물렀을 때에도 미 본토
와의 통신 회선을 확보하는데 공헌했으며, 북진시에도 계속 운용되었다.

BC-610이 주축이 되는 SCR-399는 한국 전쟁에서만 1만시간 이상 운용된
사실은 무선 통신의 역사에 남길 만하다.

이밖에 주파수 안정도와 음질이 나쁘기로 이름이 난 BC-191 송신기를
주구성품으로 하는 SCT-188 시스템이 한국전쟁에 참여하고 휴전 후에도
한동안 우리 육해공군에서 운용됐다.

여기서 잠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한국 전쟁이 발발한 시기
까지 미국이 어떤 과정으로 어떤 군용 무선 기기를 개발하여 어떻게 운용
하였는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

군용 통신 기기는 그 수량이 1만대를 넘으면, 단일 회사를 지정하지 않고
복수 회사에 발주했다.

여러 회사에서 생산한 통신 기기는 전장에서 운용해야 하는 특수한 환경에
적합한지를 판별하기 위해 군의 연구 기관은 물론 대학과 민간 연구소와
협력하여 군용 규격(MIL-SPEC)을 정하고, 생산업체에 이것을 충실히 지킬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군용 통신 기기는 그 나라의 연구개발 시험평가 품질보증등 고도의
산업 기술을 필요로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미 해군과 육군의 기기 명명법이 서로 달랐다.

BC-611/SCR-536은 미 육군의 분류법으로, SCR는 Signal Corps Radio의
약어로서 시스템을 뜻하고, BC는 Basic Component의 약어로서 구성품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통신 부대 무선기(Signal Corps Radio)시스템 536을 뜻하며,
이 시스템은 BC-661로 구성된다는 뜻이다.

1940년께부터는 미 육해군 간에 공통 규격에 의한 기기 명명법이 채용
되었으며, 약간의 수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를테면 기기명 앞에 붙는 AN은 Army&Navy의 약어로서 육해군 공용임을
뜻한다.

ARC-5는 항공기 탑재 무선 통신(Airborne Radio Communication) 제5시스템
을 뜻한다.

우리 육군이 한국전쟁 중 미국으로부터 군원으로 받아 운용한 대표적인
무선장비로는 단파대(AM) 송수신기인 AN/GRC-9, 초단파대(FM) 송수신기인
AN/TRC-6,8,9및 10, 다중반송(다중반송) 통신시스템인 AN/PRC-3,4,24등이
있다.

지금은 로크웰사에 흡수된 콜린스사는 1945년부터 한국 전쟁 직전까지
AN/ART-13, AN/ARC-2, AN/ARC-27, AN/FRT-5, AN/FRT-6, AN/GRC-27등을
개발.납품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