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 경제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는 성장, 물가 및 경상수지
등을 들 수 있다.

우리 정부가 당초 목표로 정한 올해 경제성장(7~7.5%)과 물가(4.5%)는
지표상으로 볼 때 아직 걱정할 단계에 이르진 않았지만, 경상수지(110~
120억달러 적자)는 7개월만에, 그것도 중간에 수정한 목표치에 벌써
도달할 정도로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구체적으로 7월말 현재 무역적자가 무려 79.1억달러, 무역외수지와
이전수지를 합한 경상수지적자가 103.5억달러에 달했다.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 책임은 당연히 정부의 몫이다.

그래서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소비를 줄이고 저축증대로 해결방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나쁜 방법은 아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때문에 좋은 방법이랄 수가 없다.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무역적자를 판별하는 정부의 사고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무역흑자나 적자를 파악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하나는 대외적으로 수출과 수입으로, 다른 하나는 국내적으로
저축과 투자로 파악하는 방법이다.

예를들어 무역적자가 발생했을 경우 이를 해소하기 위해 미시적으로
수입을 줄이고 수출을 늘리거나, 아니면 거시적으로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 투자로 유인하는 방법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유화.개방화 물결로 수입저지에는 한계가 있고,
마찬가지로 수출증가도 역부족이 역력하다.

그래서 정부는 지금 후자의 방법을 채택하여 저축증대로 대처하려
하고 있다.

이런 전통적인 방법으로 무역흑자.적자를 판별하는 것은 너무나
고전적이어서 그 원인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해결책을 찾기란
더욱 용이하지 않다.

따라서 새로운 무역흑자.적자의 판별식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 판별식이란 투자 수출 수입의존도와 저축율 등 네가지 요인으로
구성된다.

그 가운데 투자와 수출은 증가분으로 나타내며, 기본적으로 투자
증가분과의 양적인 대소관계로 흑자.적자를 판별하는 것이다.

수출증가분 앞에는 계수로서 분자에 저축율을, 분모에 수입의존도를
나타낸다.

이 식에서 수출의 증가분에 이 계수를 곱한 것이 투자의 증가분과
같으면 무역은 균형이고, 그것보다 작으면 무역은 적자이며, 그것이
크면 무역은 흑자로 판정된다.

때문에 무역흑자는 국내투자의 증가에 비해 수출증가가 상당히
크거나 저축율이 높거나 수입의존도가 낮은 경우에 발생한다.

반대로 무역적자는 국내투자의 증가에 비해 수출의 증가가 지나치게
작거나 저축율이 낮거나 수입의존도가 높을 경우에 나타난다.

이와같이 투자 수출 수입의존도와 저축율 등 네가지 요인에 대소
관계로 파악할 수 있는 이 판별식은 유명한 케인즈 승수이론에서
도출한, 근대 경제학의 무역이론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외국무역
승수식을 약간 변형하여 전개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매우 중요하다.

이 간단한 판별식으로 우리나라의 고도경제성장시기의 성장과 그
틀을 이해하고 아울러 요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무역적자 확대의
요인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판별식으로 일본의 경제구조와 비교해 볼때 우리 경제의 특이한
구조는 높은 수입의존도에서, 그것도 과다한 중간재수입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관련된 수치를 비교해 보자.

1994년도 기준으로 총저축율은 한국이 35.4%, 일본이 31.3%로 한국이
높다.

그러나 수입의존도는 일본이 11.5%임에 비해 한국은 무려 29.9%로
엄청나게 높다.

또한 우리 경제구조는 일본의 그것과 다를바 없는 "원재료수입 <>가공
<>완제품수출"이라는 무역패턴이면서도 무역수지가 왜 일본은 흑자이고
우리는 적자인가.

일본의 경우 저축율이 높은 가운데 수출과 투자가 늘어도 국내소득은
증가하지 않고 수입도 늘지 않는다.

또한 수입의존도가 낮아 국내소득이 증가한다해도 수입은 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은 무역흑자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저축율이 높은 수준임에도 수입의존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국내소득이 비록 감소한다해도 수입은 늘어난다.

수입의존도가 높은 상태에서 저축율이 월등히 높지 않는한 점점
수입은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한국은 무역적자다.

때문에 수출 증가세가 투자증가세와 비교해 어느 정도 이상 강하지
않으면 무역은 적자가 된다.

매우 간단한 논리이지만 그 효과는 보다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역적자의 요인을 과소비에서 찾고 있다.

물론 지나친 수입사치품의 소비나 필요이상의 해외여행은 자제해야
마땅하다.

과소비를 억제하고 저축을 늘려야 한다.

말이야 옳은말이지만 무역적자요인을 거기에서 찾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약간의 책임이 국민에게 있기 하지만 전적으로 국민의 책임으로
전가시키는 것도 무리다.

따라서 무역적자개선을 위해선 저축율을 높이고자 하는 대책보다
수입의존도를, 그것도 중간재 수입을 낮출 수 있는 대책이 우선
필요하다.

그것이 무역적자를 해소하는데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위의 판별식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무역적자의 주범은 높은
수입의존도에 있다.

그것도 최종소비재수입에 있다기보다 총수입액의 40%이상인 중간재의
수입에 있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지난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무역적자
심화요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내용의 요점은 최종생산물의 중간재수입 유발효과를 볼 때 우리
나라는 일본(90년 기준)의 7%에 비해 2.6배나 높은 20.1%의 수준에
이른다.

1993년도의 20대 소비재는 2.3배, 15대 주요자본재 생산은 3.3배이다.

예를들면 우리의 주요 수출상품인 반도체(34.3%), TV.VTR.음향기기
(34.3%), 선박(30.2%), 자동차(22.3%) 등의 중간재 수입유발효과는
일본에 비해 무려 2.6~4.6배나 된다.

이렇게 본다면 최종생산물의 중간재 대체개발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구체적으로 높은 수입의존도와 최종재생산물의 중간재
수입유발효과가 크다는데 있다.

그러므로 연간 수출과 수입의 양이 각각 1,000억달러가 넘는 상황에서,
그것도 원료와 중간재 수입이 어느 나라보다 높은 상태에서, 무역적자의
책임을 국민의 소비에, 그것도 과소비로 몰아부친다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자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무역적자방어는 정부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진정 정부가 해야할 일은 무역적자의 원인을 정확히 판별한
후 현명한 대책을 수립하여 실시하는 데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