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춘향전' 창극각색 중국 산두지역 널리 공연..안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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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전인 "춘향전"이 중국남부의 경제특구인 산두
지역에서 널리 공연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안경준 전 (주)쌍용 홍콩지사장은 산두일대에서 "춘향전"이 창극으로
만들어져 보전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 CD와 레이저디스크까지 나와
있다는 사실을 발견, 그에 관련된 상세한 글을 본사에 보내왔다.
안지사장의 기고문을 요약, 게재한다.
< 편집자 >
======================================================================
지난 5월 서울에서 개최된 "산두시 경제특구 투자환경설명회"의
고문으로 산두시 허덕립 서기가 인솔하는 대표단과 함께 서울에 머물때의
일이다.
어느 자리에서 지금의 서울이 한양이냐, 이몽룡과 춘향이 가약을 맺은
남원이 어디쯤에 있느냐 등의 질문을 받고 산두 사람이 춘향전을 어떻게
잘아느냐고 물었더니 대답대신 참석자 모두가 조주어로 된 창극의
한 대목을 합창하여 저으기 놀랐다.
이유를 물으니 오래전 "춘향전"의 극과 창이 그곳에 전래돼 특히
창을 즐겁게 부르고 있고 지금은 비디오테이프며 레이저디스크까지
나와 시판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홍콩으로 돌아온 즉시 대표단에게 부탁하여 창극대본을 입수하고
우리나라 춘향전(전영진편저)을 구해 조극 춘향전 (왕비개편, 양광천
황추규 작곡)과 대조해 보았다.
소설과 창극본의 대조이긴 하지만 줄거리는 틀림없는 한 뿌리였다.
창극은 모두 6장으로 조선전라도남원부에서 시작하여 1장 광한루
2장 백년가약 3장 애가와 별가 4장 일심 5장 몽용사방 제6장 옥중가로
어사대인 출두, 변학도의 투옥으로 막을 내리고 있고 등장인물도
완전히 같았다.
산두시 주변지역을 이곳사람들은 통칭 조산지역이라고 부르고 자기들을
조산인이라고 한다.
산두는 1861년 개항이래 대외무역항으로 135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위치는 광동성의 동북부에 있으나 지형상으로는 복건성과 접하고
있어 그들의 조주어는 복건과 대만에서 사용되고 있는 남어와 60~80%
정도 통한다.
조주시는 당나라때부터의 고도로 16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옛부터
많은 문인들이 낙향, 정착했기 때문에 광동의 공.맹자 고향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조주문화의 배경도 춘향전이 전해진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주지역의 중심이 조주시에서 산두시로 옮겨오게 된 것은 최근의 일로
산두시가 중국의 4대 경제특구의 하나로 지정되면서이다.
그러나 문화의 뿌리는 조주시에 있을 뿐만 아니라 산두경제특구를
배후에서 지원하는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조주인은 현재 이 지역에 약 1,000만명이 진출, 이 지역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 세계적인 재벌 이가성을 비롯한 동남아재벌 10여명도 이 지역
출신이다.
이 지역 출신의 화교와 관련해 빼놀을 수 없는 곳은 태국이다.
산두시가 경제특구로 지정된 후 제일 먼저 대외항로를 개설한 곳도
방콕인 바 물론 화교의 투자유치가 직접적인 목적이겠지만 역사적 배경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바다물이 다다르는 곳에 화교가 있다"는 표현도 있지만 역시 화교의
집중지역은 동남아이고 특히 조주인은 태국화교의 90%이상을 점하고
있다.
화교의 대량 진출은 아편전쟁후 (1840년)에 이뤄졌지만 조주인의
태국진출은 보다 이전에 시작되며 조주인이 왕위에 오른 일도 있었다.
조주부등해 현출신의 정용과 태국부인 사이에 난 정소 (1767~1782,
태국명 피아다그신)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무론 당대에 끝나고 피살됐지만 아버지나라에서 동향인과 친척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태국만은 조주인이 압도적이다.
"춘향전"의 시간적 무대인 조선조 숙종 (1674~1720)때는 이미 조주인의
해외진출이 시작된 시기이므로 우리나라와도 왕래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같다.
춘향전이 인연이 되어 우리나라와 중국남부의 가장 활발한 대외무역항인
이 지역과의 문화교류는 물론 경제교류가 보다 폭넓게 이뤄졌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5일자).
지역에서 널리 공연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안경준 전 (주)쌍용 홍콩지사장은 산두일대에서 "춘향전"이 창극으로
만들어져 보전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 CD와 레이저디스크까지 나와
있다는 사실을 발견, 그에 관련된 상세한 글을 본사에 보내왔다.
안지사장의 기고문을 요약, 게재한다.
< 편집자 >
======================================================================
지난 5월 서울에서 개최된 "산두시 경제특구 투자환경설명회"의
고문으로 산두시 허덕립 서기가 인솔하는 대표단과 함께 서울에 머물때의
일이다.
어느 자리에서 지금의 서울이 한양이냐, 이몽룡과 춘향이 가약을 맺은
남원이 어디쯤에 있느냐 등의 질문을 받고 산두 사람이 춘향전을 어떻게
잘아느냐고 물었더니 대답대신 참석자 모두가 조주어로 된 창극의
한 대목을 합창하여 저으기 놀랐다.
이유를 물으니 오래전 "춘향전"의 극과 창이 그곳에 전래돼 특히
창을 즐겁게 부르고 있고 지금은 비디오테이프며 레이저디스크까지
나와 시판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홍콩으로 돌아온 즉시 대표단에게 부탁하여 창극대본을 입수하고
우리나라 춘향전(전영진편저)을 구해 조극 춘향전 (왕비개편, 양광천
황추규 작곡)과 대조해 보았다.
소설과 창극본의 대조이긴 하지만 줄거리는 틀림없는 한 뿌리였다.
창극은 모두 6장으로 조선전라도남원부에서 시작하여 1장 광한루
2장 백년가약 3장 애가와 별가 4장 일심 5장 몽용사방 제6장 옥중가로
어사대인 출두, 변학도의 투옥으로 막을 내리고 있고 등장인물도
완전히 같았다.
산두시 주변지역을 이곳사람들은 통칭 조산지역이라고 부르고 자기들을
조산인이라고 한다.
산두는 1861년 개항이래 대외무역항으로 135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위치는 광동성의 동북부에 있으나 지형상으로는 복건성과 접하고
있어 그들의 조주어는 복건과 대만에서 사용되고 있는 남어와 60~80%
정도 통한다.
조주시는 당나라때부터의 고도로 16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옛부터
많은 문인들이 낙향, 정착했기 때문에 광동의 공.맹자 고향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조주문화의 배경도 춘향전이 전해진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주지역의 중심이 조주시에서 산두시로 옮겨오게 된 것은 최근의 일로
산두시가 중국의 4대 경제특구의 하나로 지정되면서이다.
그러나 문화의 뿌리는 조주시에 있을 뿐만 아니라 산두경제특구를
배후에서 지원하는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조주인은 현재 이 지역에 약 1,000만명이 진출, 이 지역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 세계적인 재벌 이가성을 비롯한 동남아재벌 10여명도 이 지역
출신이다.
이 지역 출신의 화교와 관련해 빼놀을 수 없는 곳은 태국이다.
산두시가 경제특구로 지정된 후 제일 먼저 대외항로를 개설한 곳도
방콕인 바 물론 화교의 투자유치가 직접적인 목적이겠지만 역사적 배경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바다물이 다다르는 곳에 화교가 있다"는 표현도 있지만 역시 화교의
집중지역은 동남아이고 특히 조주인은 태국화교의 90%이상을 점하고
있다.
화교의 대량 진출은 아편전쟁후 (1840년)에 이뤄졌지만 조주인의
태국진출은 보다 이전에 시작되며 조주인이 왕위에 오른 일도 있었다.
조주부등해 현출신의 정용과 태국부인 사이에 난 정소 (1767~1782,
태국명 피아다그신)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무론 당대에 끝나고 피살됐지만 아버지나라에서 동향인과 친척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태국만은 조주인이 압도적이다.
"춘향전"의 시간적 무대인 조선조 숙종 (1674~1720)때는 이미 조주인의
해외진출이 시작된 시기이므로 우리나라와도 왕래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같다.
춘향전이 인연이 되어 우리나라와 중국남부의 가장 활발한 대외무역항인
이 지역과의 문화교류는 물론 경제교류가 보다 폭넓게 이뤄졌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