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이 대옥의 방으로 가니 자견이 혼자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대옥 아가씨는 어디 있니?"

보옥이 방안을 둘러보며 물었다.

"형무원에서 방금 돌어오셔서 지금 목간통에서 몸을 씻고 있어요"

문득 보옥의 눈 앞에 목간통 물 속에 잠겨 있는 대옥의 알몸이 어른거렸다.

그 알몸은 조금 전 추상재에서 본 탐춘과 보금의 육감적인 알몸들과는
달리 가녀린 구석이 있어 애처롭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런 가는 몸매도 이상한 연민을 자아내면서 나름대로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것이었다.

물론 보옥이 대옥의 알몸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병약한 얼굴과
어깨선들로 미루어 보아 그 알몸이 어떠할 것인가 하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바였다.

보옥이 생각 같아서는 자기도 목간통으로 달려가 대옥과 함께 몸을 물
속에 담그고 탐춘과 보금의 일로 인한 충격을 달래고도 싶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에서만 그쳐야 하는 법이었다.

그렇게 대옥의 알몸을 떠올리다가 옆에 앉은 자견을 보니 저 애의 알몸은
또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검은 점무늬가 박힌 비단 저고리에 역시 검은 빛 비단 조끼를 입고 있는
자견은 얼굴과 입이 자그마 하고 몸이 왜소해서 품에 안고 가지고 놀기에는
아주 적합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감과 동시에 보옥의 손이 어느새 자견의 목덜미에
닿아 있었다.

그러자 자견이 발딱 몸을 뒤고 물려 보옥의 손길을 피했다.

"말로 하시지 왜 제 몸에 손을 대고 그러세요?

대옥 아가씨도 늘 우리에게 보옥 도련님과 함부로 히히덕거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있단 말이에요.

도련님이 이러시는 걸 알면 우리 아가씨 또 마음이 상해 병이 도질
거예요"

보옥이 무안하여 얼굴이 벌개질 지경이었다.

"대옥이 병이 도지면 안 되지.

근데 대옥이 요즈음 연와죽을 잘 먹고 있는지 모르겠네.

이삼년은 꾸준히 먹어야 효과를 본다고 하던데"

보옥이 대옥의 건강을 염려하는 척하면서 무안한 상황을 빠져나오려
하였다.

"이제 대옥 아가씨가 소주로 내려가면 그 비싼 연와를 어떻게 사 먹어요?"

자견이 불쑥 내뱉는 말에 보옥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어떨떨해졌다.

"대옥이가 소주로 내려가다니?"

"몇달 후면 내려갈 거예요.

여기가 외할머님 댁이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외가 쪽이잖아요.

시집을 가실 때도 다 되었는데 아버지 쪽 친척들이 모여 사는 소주로
내려가서 중매를 받아야죠"

보옥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스르르 쓰러졌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