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임 "지라꾸미" 식구들이 지난달 주말을 이용하여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것은 우리들이 만난지 30년만의 제법 큰 사건이었다.

우리는 모두 육군 경리장교,그것도 60년대말 영천에 있었던 경리학교에서
임관하거나, 교육을 마치고 그곳에 자충되어 교관 또는 기간장교로 함께
근무하였던 전우들 11명이 군대생활의 우정을 사회에서 더욱 소중하게
이어가고 있는 모임이다.

우리 식구들은 2년(ROTC)또는 3년(공인회계사 장교)간을 한부대에서
동고동락 하면서 수많은 에피소드와 추억을 남기고 군대생활을 마치게
된 70년6월말 일곱명이 함께 전역하는 회식 자리에서 우리모임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전역을 앞둔 청년들이 품었던 우리의 푸른 꿈에 비추워 가능성 이외엔
내세울게 없던 우리의 초라한 현실을 미꾸라지에 비유하고, 이제 각자의
노력으로 꿈을 실현하여 "용"이 되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미꾸라지를 거꾸로
하여 "지라꾸미"로 우리모임의 명칭을 정했던 것이다.

우리 "지라꾸미"멤버를 소개하면 67년 임관한 김충환(한국전자전무),
양원석(영화회계법인대표), 양한수(제일은행지점장),
이정달(한국할부금융사장)씨와 이듬해에 임관한 김성수(재미국.사업),
노정광(조폐공사), 서정우(신한증권상무), 이성태(한국은행부장),
허덕행(동아제약상무)씨이며, 우리의 막내로는 69년 육군중합행정학교에서
임관한 김종상(국세청국장)씨 등 제각기 각분야에서 제몫을 다하면서 용으로
비상하고 있으면서도 필자(66년 임관)가 고참이라고 늘 좌상에 모셔지는(?)
것이 민망한 일이지만 든든한 후배들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매월 한번씩 만나는 자리도 이제는 제법 그럴듯한 곳에서 모일 수도
있는 처지이지만, 그옛날 영천 부대앞 단포거리의 배과부집 등에서 막걸리
마시던 그 시절의 추억에 안주하여 그저 아직도 궁사이 넘치는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집사람을 비롯한 제수씨들에게서 궁상떨지 말라는 핀잔을 가끔
듣던 터이므로 이번에 큰마음 먹고 제주도 여행을 단행하여 본때를 보인
것이다.

여행중에 그렇게 들 좋아하고 내내 낄낄거리며 이제 우리 모임도
탈바꿈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고 결의를 다짐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돌아오는 날 저녁 자리에서 생선회 주문을 아끼다가 또한번 "제버릇"소리를
들은 것이 옥의 티 였으니.

아무튼 우리 지라꾸미들, 이젠 무언가 용트림을 기대하면서 형제보다 더
진한 우정을 다짐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