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다 보면 문득 지나간 군시절이 되살아 나곤 한다.

포병 관측병이었던 나는 동해안의 높고 낮은 수많은 봉우리들과 친구가
되어 지냈다.

등에는 무전기를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했던 기억보다는 계곡의
맑은 물과 정상에서 바라다본 북쪽의 금강산 줄기와 시퍼런 동해바다가
먼저 생각난다.

"한도산악회"는 시골에 촌락이 형성되듯 아주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7, 8년 전만해도 지금 같지 않아 토요일 자유근무 복장도 아니었고 차도
없던 나는 양복에 배낭을 메고 출근하곤 했다.

이런 나의 모습 때문인지는 모르나 산을 좋아하는 몇몇 직원들이 모이면서
산악회가 조직된 것이다.

작년의 설악산 등정은 나에게 특히 유별나다.

전날 산기슭에 여장을 푼 우리는 새벽 비소리에 깼다.

서로의 표정에서 무언의 대화가 이루어졌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철수냐, 강행이냐를 고심한 끝에 우리는 산행을 택했고 그 결과는 뻔했다.

나중에서야 안 일이지만 그날 등정을 한 팀은 모두 두 팀이었는데 한 팀은
중도에 산장에서 포기했고 우리만이 양폭 회운각을 거쳐 대청을 넘어 오색에
도착했다.

큰소리만 뻥뻥 치고 앞장 섰던 나는 체력관리에 한동안 무심했기에
낙오하였다.

당시 근처에는 2명이 더 있었는데 역시 체중이 많이 나가는 특판부
임용관차장과 정해승과장이었다.

선두에 선 직원들이 우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오다 오색 입구에서 만난
시간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8시 무렵.

출발한지 14시간만에 하산한 것이다.

허리를 삐끗한 나를 영업관리부 장석윤주임이 근육을 풀어주고 플래시를
들고 뛰어오던 장철환주임과 남기봉씨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한국도자기의 주고객이 여성이라는 것을 반영이라도 하듯 산악회의
여성파워는 막강하다.

큰언니인 업무부 김은실주임과 지칠 줄 모르는 무역부 이지연씨를 비롯하여
여직원 12명은 많은 수의 남자직원들을 오히려 인솔할 정도다.

영업관리부 양윤형대리가 살림을 도맡아 하고 별도의 임원은 없지만 사내
그 어떤 모임보다도 활발하다.

물론 회사의 재정지원을 충분히 받고 있다.

지금도 직원들간에 말소리가 오고 간다.

"언제 등산 갈 거야, 오랜만이니까 여흥도 갖자고!"

지금도 나에겐 제일 부러운 게 있다.

바로 유유자적 배낭을 멘 채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