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보옥 도련님을 놀리려고요, 대옥 아가씨가 소주로 내려가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랬더니 도련님이 그만 쓰러지셨어요.

도련님이 대옥 아가씨를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는 줄은 몰랐어요"

자견이 두 손을 모아 빌다시피 하며 대부인의 눈치를 연방 살폈다.

"그럼 그렇지.

아무 이유도 없이 쓰러질 리가 있나.

쯔쯔, 사내 대장부가 이리 마음이 약해서야.

농담 한 마디에 충격을 받다니"

대부인이 혀를 차며 염려스런 표정으로 보옥을 들여다보았다.

보옥은 다시 잠잠해져 혼이 나간 듯 늘어져 있었다.

설부인과 여러 부인들이 보옥이 약 두어 첩만 먹으면 금방 회복될
것이라고 하며 대부인을 위로하고 있는데, 하인이 들어와서 아뢰었다.

"임자효와 그 마누라가 도련님 문병을 왔습니다"

그러자 보옥이 두 눈을 부릅뜨고 사방을 둘러 보며 소리를 질렀다.

"임씨 댁에서 대옥을 데리러 왔다고?

안돼, 안돼.

당장 내쫓아"

보옥은 임자효의 "임"자를 듣고 소주에서 대옥을 데리러 사람이 온 줄로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래, 그래.

알았다.

임씨를 당장 내쫓아라"

대부인이 보옥을 안심시키기 위해 짐짓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보옥은 불안에 질린 얼굴로 자견의 팔을 꼭 붙들고 놓지
않았다.

이런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의원이 전갈을 받고 급히 달려와 보옥을
진맥하였다.

"도련님의 증세는 급통미심증(급통미심증)입니다.

급하게 충격을 받아 혈관이 막혀 정신이 혼미해지는 병이지요.

약으로 혈관만 뚫어주면 정신도 돌아올 테니 염려 마십시오"

의원이 처방해준 대로 약을 달여 먹이니 과연 보옥의 증세가 차도를
보였다.

보옥이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와 자견이 자기에게 농담을 한 것을 알고
자견에게 따져 물었다.

"왜 나를 그렇게 놀렸느냐?"

"대옥 아가씨가 도련님 마음이 어떤지 잘 알 수 없다고 늘 시름에 젖어
있길래 내가 도련님 마음을 알아보려고 그랬던 거지요.

대옥 아가씨를 생각하는 도련님 마음이 어떤가 하고요"

자견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였다.

"그래 이제 알았느냐?"

"그럼요.

도련님이 헛소리를 하는 중에 "이 세상에 대옥이 이외에는 임씨가 없다"고
부르짖은 것 기억하세요?

그래야 대옥 아가씨를 데리러 올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그 소리를 듣고 도련님이 얼마나 우리 아가씨를 생각하고 있는지
뼛속 깊이 알게 되었어요.

감동을 받았다니까요"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