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를 통해 수천년간 부동의 명성을 구축해 온 중국의 실크산업이
벼랑앞에 섰다.

세계시장의 75%를 지배하는 중국 실크산업 종사자 2,000만명이 생계에
위협을 느끼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중국산 실크원사 및 완제품수출은 물량기준으로 지난해 약 20% 감소한데
이어 올 1.4분기엔 42%나 곤두박질쳤다.

실크원사의 수출가격은 지난 92년 t당 3만6,000달러를 정점으로 하락세를
지속, 2만2,000달러선으로 떨어졌다.

실크가 비교적 고마진을 거둘수 있는 산업임을 인식한 각국의 경쟁업체들이
대거 시장에 뛰어들면서 공급과잉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브라질의 경쟁업체들은 중국의 원천기술을 도입,
중국산보다 싼 저가실크를 대량 수출한다.

또 주요 실크수입국인 미국과 유럽연합은 밀려오는 실크를 저지하기 위해
중국산 실크수입쿼터를 삭감, 연간증가율 1%이내로 제한토록 조치했다.

중국업계는 이같이 시황이 악화된 현상을 "자업자득"이라고 통탄한다.

정부는 지난 88년 호경기를 맞아 생산확대를 장려하기 위해 정부독점체제를
해제했다.

실크산업에 민간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시장에 참여토록 허용한 것이다.

이후 자영업체들은 폭발적으로 생산량을 늘려 수출규모를 매년 30%씩
증대시켰다.

결과 현재 국내생산능력은 13만t으로 지난 90년의 2배 수준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세계수요는 25%증가에 그쳤다.

국제시장에 공급과잉상태가 빚어지자 수출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산동성산실크로 대변되는 고급실크는 최근 국제패션시장에서 각광받고
있지만 다른 고급소재에 비해 가격은 싼 편이다.

중저가 실크는 과거엔 경쟁자로 치지도 않던 면이나 울과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고급직물류로 인식되던 실크가 이제 평범한 옷감으로 전락한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저가품매출이 유력실크업체들의 수익성향상에 기여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실크의 원료가 되는 누에고치의 국내가격이 92년 50달러를 약간 상회했으나
지난해 90달러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누에를 치는 잠사업이 목화나 채소재배보다 수익성이 낮은데다 재배방식이
까다로워 농부들이 이탈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항주근처의 대규모 잠사단지에선 지난 3년간 누에고치 생산이
절반으로 줄었다.

8,000명을 거느린 항주실크사는 원자재가격 폭등과 수출가 하락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항주와 소주지역 업체들보다 싼 임금을 무기로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내륙지방 사천성 업체들도 최근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업계의 출혈경쟁으로 이 지역 320개업체들은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다.

마침내 중국당국은 지난 5월 실크시장 규제조치를 재도입했다.

경영이 부실한 수백개의 업체들을 폐쇄시키는 한편 품질기준을 강화하고
가격통제를 재개한 것이다.

유력일간지 인민일보는 출혈경쟁이 모두에게 실이라면서 규제정책을
적극 지지했다.

그러나 시황이 급변한 상황에서 정부의 규제정책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앞으로 두고봐야 알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유재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