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일본 최고의 자동차메이커 다이하쓰공업이
7년만에 재기에 성공했다.

그간 고집스럽게 지켜온 원리원칙주의를 버리고 과감하게 내놓은 경RV
(레저용차)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활력을 되찾은 것.

다이하쓰는 88년 주력차종 "미러"의 판매호조에 힘입어 소형 자동차부문
시장점유율을 27%로 끌어올리면서 수위인 스즈키에 1.1%포인트차로
추격했었다.

그러나 이후 판매부진이 지속됐고 지난 94년엔 스즈키와의 격차가 10%를
넘어섰으며 75개의 판매자회사중 80%가 적자를 보는 참담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다이하쓰를 일으켜 세운것은 지난해 8월 첫 시판한 RV"무브".

다이하쓰는 지난해 소형 자동차부문의 판매가 전년대비 1만9,000대나
줄었는데도 무브의 판매호조(39만5,000대)로 총판매대수는 3년만에
처음으로 늘어나는 성과를 얻었다.

이에 따라 적자였던 판매자회사 대부분이 흑자로 돌아섰으며 95회계연도
(95년4월~96년3월)의 경상이익은 98억엔으로 전회계연도보다 62% 증가했다.

이처럼 다이하쓰의 구세주역할을 톡톡히 해낸 무브이지만 탄생의 길은
험난했다.

"경RV가 대세이기는 하지만 시장은 이미 스즈키가 잠식하고 있다.

다른 회사보다 시판이 2년이나 늦어지는데 역전이 가능할까"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사내에 팽배했기 때문이다.

메이지 40년(1907년) 오사카대학 공대와의 산학합동으로 출발한 다이하쓰의
모토는 견실주의 경영.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나쁘게 말하면 모험은 하지 않는 회사로 알려져
있었다.

미쓰비시의 RV시판을 한달여 앞둔 지난 93년 7월 다이하쓰는 "''미러''
수준의 마진폭을 확보하고 판매가격을 100만엔정도로 낮춘다.

단 판매대수는 미러의 10분의 1로 잡는다"는 기치아래 RV개발팀을
구성했다.

이같은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통상 100억~150억엔이 소요되는
개발비를 50억엔정도로 억제해야 했다.

이는 다이하쓰의 종래 개발방식으로 볼때 불가능한 일이었다.

RV "무브"는 다이하쓰의 이러한 "상식"을 무너뜨리면서 탄생했다.

93년 8월 상식타파를 위해 단행한 첫 작업은 부품공유화.

당시 다이하쓰에는 "새 차를 개발하니까 부품도 새 것으로"라는 인식이
뿌리박혀 있었다.

개발팀은 "미러"의 부품 3,500종류 가운데 쓸수 있는 것을 철저히 공유하고
도저히 유용할수 없는 부품은 설계변경을 통해 사용했다.

결국 미러와의 부품공유율을 75%까지 끌어올릴수 있었다.

그래도 개발비 50억엔을 맞추기는 힘들었다.

이에 제2의 상식타파를 단행했다.

시작품에서부터 양산용 금형을 제작키로한 것이다.

당시 업계에서는 시작품은 값싼 금형으로 조립하고 이결과 설계착오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제서야 양산용 금형을 사용하는것이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다이하쓰의 개발팀은 과감히 시작단계를 생략키로 하고 휴일도 반납,
매일 밤 11~12시까지 작업에 몰두했다.

이렇게 해서 개발에 들어간 총비용은 47억엔이었다.

"웨건 R"보다 시장진입이 2년이나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브"가 히트할수
있었던 것은 디자인면에서 명확한 차별화를 실현하고 옵션기능 강화 등
후발제품의 이점을 충분히 살렸기 때문.

그러나 최대의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종래의 제품전략및 개발방식을 전면
수정한 점이다.

다이하쓰는 무브의 선전에 힘입어 최근 개성적인 차를 내놓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 4월 1인승 경승용차 "미제트 "를 시판한데 이어 5월에는 레트로풍
경자동차 "옵티클래식"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모험과 리스크를 회피하면 히트상품은 탄생되지 않는다" 다이하쓰는
무브를 만드는 과정에서 터득한 이같은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

< 김지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