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들은 재주가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부나 실험뿐이다.

연구원생활을 하는 이유를 물으면 대개 그렇게 답변한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바이오매스연구실의 이진석박사(39) 역시 마찬가지다.

흔한 말로 "실험실 체질"이다.

별명도 "꺼벙이"다.

이박사는 그러나 요즘들어 한가지 재주가 더 생겼다.

장거리 여행이다.

휴가때 훌쩍 떠나는 호사스런 여행은 물론 아니다.

목적지도 특이하다.

그가 손에 쥔 버스표는 언제나 전국각지의 화력발전소행이다.

발전소자체에는 흥미가 없다.

그의 발길이 머무는 곳은 발전소주변의 햇빛 잘드는 웅덩이다.

거기서 그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시료를 채집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평생 연구과제를 완성시킬 단서를 찾기 위함이다.

그의 연구과제는 미세조류를 이용해 공기중의 이산화탄소(CO2)를 효율적
으로 제거하고 그 미세조류를 연료나 동물사료등 유용물질로 전환해 쓰는
방안에 관한 것.

고려대를 거쳐 국비유학생으로 미 펜실베이니아주의 리하이대에서 박사학위
(생물화공)를 따고 87년 에너지연에 합류한 이래 수행하고 있는 과제다.

그는 우선 미세조류가 보다 많은 CO2를 흡수할수 있는 수직형 반응시스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수직형 반응기개발은 땅이 좁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한 것.

미세조류의 활동을 부추기기 위해서는 햇빛을 많이 쪼여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외국과 형편이 다르다.

넓은 땅에 대규모 호수를 조성해 미세조류를 키우면 되는 외국의 여건을
따라갈수는 없는 노릇이다.

"100MW급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CO2를 모두 흡수시키기 위해서는
표면적이 120평방km 정도인 얕은 호수를 조성해 미세조류를 배양하면 되는데
우리실정에는 꿈에 불과하지요. 여건이 비슷한 일본에서와 같이 반응기를
수직으로 세울 밖예요"

아직 1년 남짓한 연구를 수행했을 뿐이어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10년만
연구를 지속하면 실제발전소에 적용할수 있을 정도의 반응장치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그는 내다보고 있다.

생명공학연구소 포항공대 한전기술등에서 불붙기 시작한 관련연구활동도
경쟁속에서 시너지효과를 높이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또 올해부터 시작한 발전소여행으로 이 연구의 "한국화"를 꾀할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CO2를 먹어 디젤성분으로 바꿔 놓는 나노클로롭시스, 보트류리오코크스나
동물사료로 쓸수 있는 스피룰리나, 클로로코쿰리토라등의 미세조류는 현재
모두 미국과 일본등지로부터 들여오고 있는 실정이지만 조만간 우리실정에
맞는 독특한 미세조류를 분리해 낼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그는 "식물 동물등 모든 생물로부터 나오는 자원을 일컫는 바이오매스
관련연구는 미래자원확보의 주요수단"이라며 "특히 환경보호란 차원에서도
마지막으로 기댈수 있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보다 큰 규모의 반응장치개발및 우리나라 풍토에 맞는 미세조류를
찾는 일이 어렵기는 하지만 연구원의 사명감으로 극복할수 있을 것"이라며
도수 높은 안경너머로 눈빛을 반짝였다.

< 김재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