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지난 19일 발표한 회사정리절차(법정관리)개선안은 늦게나마
허술한 법정관리제도의 맹점들을 보완했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만한
일이다.

흔히 "부실기업의 피난처"로 인색식온 법정관리제도는 부도 등
위기에 처한 기업의 빚을 동결시키고 국가(법원)가 일시 관리, 기업들
살려냄으로써 기업파산에 따른 부작용을 막는다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부실한 제도운영으로 구사주들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재산을 빼돌리고 회사를 다시 찾는 방편으로 악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는 법정관리중인 회사가 부도를 내는가 하면 불법으로 어음을
발행, 채권자와 선량한 거래업체의 피해를 확산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법정관리사상 처음으로 법정관리중 부도를 낸 논노가
그렇고, 지난 4월 법정관리중 불법으로 어음을 발행하고 거액을 빼돌린
서주산업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번 대법원의 개선안은 이같은 어이없는 부조리를 원천봉쇄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음이 눈에 뛴다.

우선 법정관리 허용조건을 대폭 강화해 주거래은행의 운용자금 지원의사가
있거나 제3자의 인수계획이 있는 회사에 한해 법정관리를 허용키로 한 것은
법정관리 홍수를 막는데 큰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93~95년까지 법정관리를 신청한 회사는 모두 157개사에 이르고
있으며 그중 61%인 96건이 받아들여져 각급 법원은 법정관리수용의
포화상태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법정관리신청 단계에서부터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므로
법원의 법정관리 판결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게 됐다.

당장 경영위기를 맞아 제3자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건영의 경우도
법정관리가 허용될지 불투명해졌다.

또 한가지 이번 개선안에서 구사주의 영향력을 완전 배제시킨 것도
큰 특징이다.

종전엔 법정관리시 구사주 주식중 3분의2를 무상 소각했으나 앞으로는
전부를 소각해 구사주의 권리를 완전 소멸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구사주가 법정관리를 통해 시간을 벌어 경영위기를 일단 모면한뒤
경영권을 다시 장악할수 있는 길을 아예 차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번 개선안에는 몇가지 미흡한 점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도 그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온 법정관리 종결기간
단축과 채무상환 유예기간조정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는 채권자의 권리보호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지금처럼 법정관리종결을 재판부의 재량에만 맡긴다면 작년 2월
법정관리중인 한진중공업이 포철계열사인 거양해운을 인수했던 것과
같은 기현상이 계속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또 법정관리회사에 대한 법원의 감독이 실질적으로 보다 강화돼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법원이 일단 법정관리판결을 내린 뒤에는 관리인에게
거의 모든 것을 일임하고 사후관리에 소홀해 온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법정관리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선 관리인이 어음발행등
경영상의 주요사항을 수시로 보고토록 하는등 감독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