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협상이 열리고 있는 이곳에선 생산직 사원의 임금을 시급제에서
월급제로 바꾸는 문제를 두고 노사간에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생산직도 사무직과 동등하게 월급제를 실시하라"(노조대표).
"좋다. 기본급으로 고정시켜 월급으로 주겠다"(사용자대표).
"사무직처럼 월급에 일정액의 초과근무수당을 넣어라"(노조대표).
"그렇게는 못한다. 기본급외엔 생각할 수 없다. 임금이라는게 일한만큼
받는 것 아니냐. 사무직의 초과수당은 근무시간 계산이 어려워 평균치를
내서 주는 것 아닌가. 실제로 사무직은 수당 받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초과 근무한다"(사용자대표).
A사의 "생산직 월급제"는 단체협상의 단골메뉴.
노사양측이 모두 도입을 원하는 공통 희망사항이다.
사측에선 시급과 월급으로 이원화돼 있는 생산직과 사무직의 임금체계를
통일시켜 생산직 근로자들의 업무의욕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노측에서는
고정된 임금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 제도 도입에 긍정적
이다.
그러나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결론을 못내렸다.
다른 업체들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매년 단체협상에서 생산직 월급제가 논의되지만 항상 문제제기로 그친다.
그래서 국내업체중 겨우 10개 회사에서만 이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정도다.
생산직의 월급제 도입이 이처럼 부진한 것은 바로 초과근무수당이라는
장애물이 버티고 있어서다.
정확하게 말하면 초과근무수당을 월급에 넣느냐 마느냐, 넣는다면 얼마나
반영해야 하느냐를 두고 노사양측이 대립하고 있는 것.
초과근무수당이란 하루 기본 작업시간인 8시간외에 일을 더 할 경우 지급
하는 돈이다.
얼른보기엔 월급이나 시급이나 일 한만큼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 문제를 바라보는 노사양측의 시각차는 크다.
노측은 "초과근무수당은 사실상 고정임금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애당초 낮은 기본급을 보전해주기 위한 수단으로 초과근무수당이 생겨났다
는 논리도 곁들인다.
현실적으로 노측은 그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다.
생산직 근로자들의 월 급여중 초과근무수당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10%선.
따라서 이 수당을 빼버리고 월급제를 도입한다면 급여가 그만큼 줄어들
것은 불문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사용자측의 주장이나 논리도 명확하다.
"초과근무수당이란 말 그대로 초과된 노동에만 적용하는게 원칙"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기본급에 초과근무수당을 고정화시켜 월급제를 만들고 난 뒤 정말
잔업이 생겼을 경우를 상정해 보라는 것이다.
"진짜"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이중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게
사용자측의 설명이다.
사측은 이런 우려도 한다.
생산직 사원들에 고정된 초과근무수당을 기본급으로 주고 잔업을 했을 경우
일한만큼 또 진짜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한다면 사무직이 가만히 있겠느냐는
것이다.
일률적으로 초과근무수당을 받는 사무직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 돼
형평을 맞춰 달라고 요구할게 뻔하고 그렇게 되면 기업은 또 다른 임금인상
요인을 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요컨대 고정급과 수당의 중간쯤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초과근무수당이 노사
양측 모두가 원하는 생산직의 월급제화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이를 좀 확대시켜 해석하면 수십가지의 수당을 축으로 지급되는 임금구조가
"일한만큼 돈을 받는다"는 당연한 원칙을 깨버려 놓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기업들의 주먹구구식 수당 관리제도가 도사리고 있는
것도 부인하기 힘들다.
국내 대부분 업체들은 사무직과 생산직에 대해 서로 다른 방법으로 초과
근무수당을 지급하는게 관례화된데다 사무직에겐 일정한 초과근무시간을
정해 놓고 일한 시간에 관계없이 모두 똑같은 액수의 초과근무수당을 준데서
일이 꼬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급제를 월급제로 바꾸는 문제를 놓고 언제까지나 설전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생산직의 월급화는 해가 갈수록 노사협상의 핵심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형 사업장을 중심으로 1일3교대 체제가 정착돼 가는데다 설비가 자동화
되면서 잔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생산직 월급제는 대세일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사무직의 초과근무가 일상화돼던 시대도 끝나가고 있다.
시대흐름에 맞추고 대세를 따라가기 위해서도 노동 시간과 질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되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단일화되고 표준화된
임금체계를 만들어야 할때다.
그렇지 못할 경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조주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