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심리적 지지선으로 인식되던 종합주가지수 800선이 33개월
만에 붕괴되면서 주식시장에 위기감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일 800선이 무너진 종합주가지수는 21일에도 하락이 이어져
789.12로 마감됐다.

이는 지난 5월7일의 985.84이후 3개월반만에 지수가 20%나 하락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거래량이 1,000만주대를 맴돌면서 주식시장의
주요 기능인 환금성이 상실되고 있다는 점이다.

증시가 이처럼 참담한 지경까지 이르게 된데는 수출부진과 경기둔화에
따른 상장회사들의 영업실적부진, 시중 실세금리의 급등 등 주식시장을
둘러싼 장내외 여건 악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그러나 이같은 위기상황의 제1차적 책임은 정부의 잘못된 증시정책에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첫째 증권당국은 주식시장의 수요 증대에는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무리하게 공급확대 정책을 편 책임을 면할수는 없다.

증권 당국은 지난 상반기에 만도 총 2조원이 넘는 물량을 주식시장에
쏟아부었다.

특히 15대 총선직후인 지난 4월중순 주식시장 기조가 되살아나는
기미를 보이자 3.4분기에만 공급물량을 2조5,000억원으로 확대하기로
결정, 결정적으로 찬물을 끼얹었다.

주식투자에서 물량만큼 무서운 적이 없다는 것쯤은 웬만한 투자자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둘째 정부의 성급한 자율증시정책이 증시상황을 악화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정부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입 을 의식, 자본시장 개방차원에서
지난5월 주가지수 선물시장을 개설했고 증시운영을 자율에 맡긴다는
원칙아래 증안기금해체, 물량공급의 자율조정 등 주가하락을 부채질하는
정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원론적으로 주식시장은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걸음마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에게 뛰라고 강요하는 것은 성급함을 넘어
무모한 짓이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자율에 근거한 증시정책들을 보면 기관투자가의
주식보유비중이 50%를 넘어야만 실효를 거둘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기관비중이 30%를 겨우 넘는 국내 증시상황에서 볼때 정부가 OECD가입
만을 의식, 너무 서두르는 인상이다.

재정경제원은 21일 오후 공기업주식 매각물량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율증시에서 정부가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태도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대로 지금의 증시위기는 "관치증시"때 잉태된 것이지
"자율증시"의 책임이 아니다.

그토록 "자율"을 강조하고 싶다면 결자해지의 원칙에 따라 적어도 이번
위기만큼은 넘겨놓고 다음부터 자율증시에 책임을 돌려야 할 것이다.

갈팡질팡하는 정책으로 위기를 조장해놓고 이제와서 "자율"이란
간판뒤에 숨는다는 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일이다.

직접적인 증시개입이 어렵다면 간접적인 정책수단을 동원하거나
최소한 증시안정을 위한 확고한 정책의지라도 밝혀야 하는 것이
정부의 도리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