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은 경제의 거울에 비유된다.

경제가 나빠지면 주가는 떨어지게 돼있다.

아무리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증시가 일그러져
있을땐 뭔가 잘못돼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주가가 상승할 땐 그럴만한 이유가 감추어져 있게 마련이다.

최근의 주가하락도 마찬가지다.

종합주가지수가 심리적 마지노선이라는 800선 아래로 무너지고 주식
투자자들이 증시를 떠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시중 실세금리가 연일 급등하고 기업들이 추석자금을 마구 끌어
들이는 터에 주가가 안 떨어지고 배겨날 재간이 없다.

평소 주가 전망에 이견을 보이던 증시전문가들도 이번만은 이구
동성이다.

증시를 빈사상태로 몰고온 주범이 경기하강 국제수지악화 금리상승
공급과다 등이라는 데에 이론이 거의 없는 듯하다.

그래서 증시위기론 마저 거론되고 있다.

실은 주가하락보다 더 걱정스러운게 있다.

투자자들이 증시를 떠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개미군단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원리상으론 투자자들은 증시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경기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고 국제수지가 개선조짐을 보여 주가가
어느 정도 회복되면 투자자들도 증시로 돌아오는게 정상이다.

그러나 지난 몇년간의 증시상황은 이런 전망조차 어렵게 하고 있다.

경기상승국면에서도 증시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지난해 기업들의 실적이 좋았을 때도 그러했다.

최근 몇년동안 거꾸로 가는 증시가 돼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증시가 자생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백약이 무효"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예컨대 외국인투자한도를 확대해봤자 증시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기껏해야 투기적인 단기자금이 들락거릴 뿐이다.

외국인들도 한국증시에는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이 많다.

상식적인 주식시장의 원리가 빗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말고도 활황을 보이는 주식시장은 얼마든지 있다.

"동유럽증시는 높은 경제성장률과 인플레둔화 등에 힘입어 지난
90년대초 아시아증시에 못지않은 신장세를 지속할 것이다"(월스트리트
저널)는 분석이 나올 정도이다.

그렇다면 한국증시는 무엇에 발목을 잡혀 있는 것인가.

우선 공기업민영화 정책이다.

경영효율이 낮은 공기업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추진되어온 민영화
정책이 증시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정부가 뭔가를 발표하거나 하면 반드시 주가가 하락하는 반응을
보인다는 징크스도 실체를 따지고 보면 공기업민영화이다.

주가가 제자리에서 맴돈 지난 3년간 주식시장에 공급된 물량의
절반은 정부가 공급했다.

주가가 조금이라도 오르면 예외없이 정부는 공기업주식을 풀었다.

기업들이 조달해가야할 자금의 절반이 정부에게로 간 셈이다.

문제는 정부가 증시에서 쓸어간 자금이 증시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증시에서 번돈은 다시 주식에 투자하는 "큰손"보다도 못하다는게
투자자들의 비아냥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정부는 공기업민영화방식을 대폭 수정할 필요가
있다.

주식매각물량을 내년 후년으로 넘기는건 임기응변일 뿐이다.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공기업주식을 매각해서 조달
하려는 발상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할 것이다.

증시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지목되는게 있다.

바로 금융실명제라는 "유령"이다.

누구도 이를 드러내놓고 얘기하지 않는다.

아직은 실명제가 이렇게 만든게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있을 뿐이다.

당초 실명제의 도입때 증시는 호재가 될 것으로 점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실명제 실시이후 연말장세가 사라졌다는 얘기도 나올
정도이다.

어쨌든 실명제가 지키고 있는한 예전처럼 주식시장으로 풍성한
자금이 밀려오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게 투자자들의 생각인 듯하다.

실명제에 관해 오해가 있다면 정부는 이제 오해를 풀어야 할
시점이다.

어쨌거나 개미군단이 사라진다는 것은 증시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일반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을 떠나고 나면 기관투자가나 투기자들만
남게된다.

그렇게 되면 상식적인 주식투자로는 원본도 건지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증시의 악순환이 이어지게 될 뿐이다.

올들어 정부가 내놓고 있는 증권정책을 보노라면 의문이 절로 생긴다.

정부가 증시를 투기자들이 판치는 곳으로 보고있지 않은가하는 점이다.

오는 98년까지 점차적으로 폐지하기로한 공모주청약예금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반 샐러리맨들의 쌈지돈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효과적
이었던게 바로 공모주예금이었다.

보통 한 사람이 가입한 공모주예금규모가 해약하고 나면 해외여행
가기에 딱 좋은 금액이다.

가뜩이나 과소비행태가 문제되고 있는 마당에 굳이 이런 예금을
없애려는 것도 엉뚱한 발상이다.

증시 뿐만 아니라 증권정책도 거꾸로 가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