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궁에서 태비가 노환으로 돌아가시므로 나라 전체가 국상을 치르느라
침통한 분위기에 젖었다.

그럴 즈음, 녕국부 어른인 가경이 현진관에서 도사들과 함께 도를
닦다가 급사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가문의 어른들이 거의 다 태비 인산길에 올랐으므로 집안일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은 가진의 아내 우씨밖에 없었다.

우씨는 병약하여 이번 인산 길에 오르지 못하고 집에 남게 된 것이었다.

우씨는 시아버지 가경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는 곧장 뇌승의 아내를
비롯한 고참 하녀들과 시신을 검시할 의원들을 데리고 현진관으로
달려갔다.

의원들이 가경의 시신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급사의 원인을 알려주었다.

"도교의 수행법으로 금가루와 단사를 먹은 것이 잘못되어 오장육부가
퉁퉁 부어 돌아가시게 된 것입니다"

우씨가 주위의 도사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평소에도 금가루와 단사를 잡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특별히
잘못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도사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허겁지겁 대답하였다.

"이번에 대감님이 드신 단사는 이전에 드시던 것과는 달리 대감님이
새로운 비법으로 만드신 것으로, 우리들이 조심하시라고 했는데 그만
경신날 밤 북두성을 배례하시면서 잡수셨던 모양입니다.

북두성을 배례하시면서 돌아가셨으니 이 세상의 고해를 빠져나가
저 넓은 우주에서 유유자적하시게 된 줄로 압니다"

우씨는 가경의 시신을 현진관에서 철함사로 운구해놓고 집안의 어른들이
태비 국상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부친의 별세 소식을 들은 가진은 특별 허가를 받아 인산 길에서
돌이켜 아둘 가용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가경의 장례를 치렀다.

가경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가씨 가문은 눈에 띄게 기울기 시작했다.

들어오는 수입이 줄어들고 남아 있던 재산마저 바닥이 나 정원 담이
허물어져도 수리할 비용이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왕부인과 희봉이 어찌어찌 변통을 하여 가계를 간신히 꾸려
나갈 수는 있었다.

그러던 중 설상가상으로 집안의 기둥이요 막강한 후원자라 할 수
있는 귀비 원춘이 병으로 몸져 누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부인과 왕부인이 급히 궁궐로 달려가 귀비를 문병하였다.

귀비 원춘은 봉조궁에 들어온 후에 몸이 비대해지기 시작했는데, 차츰
그 증세가 심해져 이제는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에다 담까지 차올라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