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주인 중앙아시아.

''면화의 나라'' 타지키스탄은 그 남쪽변방에 있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파미르고원에서 삐져나온 자락이 국토를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나라.

남쪽 국경에서는 회교 근본주의를 주창하는 아프가니스탄과의 종교전쟁
으로 총성이 멈추지않는 곳이기도 하다.

여름평균 기온이 섭씨 40도를 넘는 이곳 초원의 땅에서 한국인의
혼을 심는 기업이 있다.

바로 갑을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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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두샨베에서는 총성과 테러의 위험이 잇따르고 국내적으로는 남북간의
지역대립으로 시달리는 오지에서 갑을은 그들이 "실크로드의 숨겨진 보석"
이라고 부르는 면화를 직접 길러내고있다.

원자재라면 세계 어느곳이든 파고드는 미국과 일본기업들조차 발을
디밀지않은 미지의 땅에 갑을이 한국기업의 "신화"를 심고있는 것이다.

6세기 이지방의 유명한 소설가 이름을 따 "휠답시"라고 불리는 갑을의
원면경작지는 타지키스탄의 북쪽 국경에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자동차로 남쪽 국경을 넘어 2시간이
걸리는 곳이다.

남북으로 75km, 동서로 10km에 달하는 경작지 전체면적은 무려 3,600만평
(1만2,000ha).

레니나바드주 마차리전 면적의 절반을 차지하는 광대한 농장이다.

현지인력은 1만2,000명.

이나라의 라흐마노프대통령조차 수시로 방문해 작황을 둘러볼 정도로
국가적인 관심이 쏠려있는 사업이다.

"면화경작이 생소한 일인만큼 조심스럽고 어려움도 많지만 한국기업으로는
처음 시도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에 긍지를 느끼면서 일하고있습니다"
(갑을타직텍스타일 홍창훈부장)

"작년에는 작황이 사상최악이어서 바짝 긴장했는데 다행히 올해에는
작황이 좋아 상당한 성과를 예상하고있다"는 홍부장(47)의 설명에는 땀에
절은 자신감이 짙게 배어있다.

타지키스탄은 무더운 날씨에다 면화성장기인 6~8월에는 비가 1~2차례만
내리는 기후여서 100일이상 40도가 넘어야하는 면화경작에는 최적지로
꼽힌다.

그러나 면화경작은 한국인에겐 역시 어렵고 까다로운 일일수밖에 없다.

물만해도 큰문제다.

작년처럼 비가 오지않아 물이 부족해도 문제지만 수확기를 앞둔
요즘같은때 비가 내리면 면화열매인 솜다래가 흰색에서 회색이나
노란색으로 변색돼 등급이 떨어져 낭패를 보게된다.

농약과 비료를 제때 조달하는것도 쉽지않다.

면화가 국가산업인만큼 절대수요가 많기도하지만 심지어 콜호즈
(집단농장)의 회장같은 유력인사들조차 따로 몰래 숨겨두고 파는것이
예사여서 돈을 주고도 구할수 없을 때가 많다.

모두 사회주의의 잔재다.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같은 인접국도 사정은 엇비슷해 성수기에는
아예 금수조치를 내리기때문에 물자조달에 애를 먹기 일쑤다.

지난4월 부임한 홍부장은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휴일없이 면화와
씨름을 하다보니 이제는 "면화박사"가 다됐다.

서울대 섬유공학과 출신으로 미국대학에서 면화전문과정을 마쳤고
미농무부가 인증하는 면화품질분류자격증까지 갖췄지만 현장은 또 다르다.

병충해같은 기술적인 문제는 10여명의 현지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받고있지만 일은 역시 자신몫이라 시도때도없이 농장을 돌아보느라
엘란트라 승용차가 1년도 안돼 다 찌그러졌다.

갑을에는 이곳이 "세계에 100만추를 심는다"는 그룹의 모토를 실현하는
전략지역이다.

그룹의 토대인 섬유를 간판으로 내걸고 원료를 직접 조달해 세계시장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야심만만한 구상의 시발점이기때문이다.

갑을은 투자비를 원면으로 회수받고 수익금을 반분하는 조건으로
합작계약을 체결,이제까지 모두 650만달러를 투자했다.

이과정에서 중앙아시아지역을 총괄하는 갑을방적 서용석전무(48)와
"섬유로 도로를 만들고싶다"는 갑을타직텍스타일 권영록사장(48)의
고생이 많았다.

이들과 홍부장은 "갑을신화"를 이끌고있는 주역들이다.

지금까지의 작황대로라면 올해에만 원면 1,000t정도를 넘겨받아
170만달러정도의 순이익을 올릴수 있을것 같다는 홍부장.

이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3~4년내에 투자비를 거뜬히 회수할수 있게될
것이다.

"경작사업이 완전히 자리를 잡을때까지 이곳에 계속 남고싶다"는
홍부장은 수확된 면화더미가 하얗게 천지를 뒤덮을 9월을 꿈꾸고있었다.

< 문희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