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사 독점전제 ]

태국 방콕의 도로는 소화불량 상태다.

도로는 턱없이 부족한데 차량은 주체못할 정도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도로를 무한정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태국정부는 급기야 내년부터 신규등록 차량은 출퇴근 시간대에 시내
중심가를 지날 수 없도록 금지하는 고육지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주변국가들은 이런 자동차폭증 문제는 안중에도 없다.

고부가가치 업종인 자동차 산업을 성공적으로 일으킨 태국이 부러울
뿐이다.

동남아시아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자동차 시장.

이 중에서도 태국의 자동차시장 성장세는 단연 1등이다.

태국의 올해 자동차 생산규모는 56만대에 달할 전망이다.

2000년에는 그규모가 100만대를 넘어서면서 생산량의 10~20% 정도는
수출까지 할 수있을 것으로 보인다.

판매량도 연간 20%씩 급증하고 있다.

이는 경쟁국인 인도네시아(40만대), 말레이시아(31만대)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수치다.

인구나 GDP 등에서 열세인 태국이 이웃나라를 제치고 동남아 자동차
산업을 제패하게 된 데는 "외자유치"라는 차별화된 전략의 힘이 컸다.

경쟁국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가 독자적으로 자동차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일념아래 "국민차"프로젝트를 추진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태국의 경우 외국산 부품에 대한 수입관세 인하등을 통해 외자를 끌어들이는
데 주력했다.

이전부터 동남아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노려온 세계적 자동차 업체로서는
당연히 태국쪽으로 발길이 쏠렸다.

특히 태국은 시장전망 인프라스트럭처 인건비 자동차부품유통망 세금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투자환경을 갖고 있다.

이런 조건들이 맞물려 태국은 외국자동차 업체의 아시아시장 전초기지로
부상한 것이다.

더구나 외국업체들은 태국을 단순히 부품 조립장소가 아닌 "완제품
생산"거점으로 키우겠다고 나섰고 이것이 바로 태국 자동차산업에 불을
댕기는 계기가 됐다.

현재 태국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도요타와 혼다등 일본업체.

양사의 시장 점유율은 90%가 넘는다.

미 3대 자동차업체(빅3)도 최근 잇달아 대규모 투자확대 계획을
발표하면서 선발주자인 일본업체 추격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GM은 지난 5월 태국에 총 7억5,000만달러를 투자, 연간 1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한다는 투자계획을 확정했다.

여기서 만들어진 자동차는 일본과 호주등지로 수출할 계획이다.

크라이슬러도 태국 진출을 위한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고 태국 자동차시장의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아직 장애도 많다.

첫째 숙련된 기술인력의 부족.

태국에는 기술자공급 자체가 부족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국 최대 부품업체인 에이블 오토파트는
직원들이 방콕대학에 진학할 경우 장학금을 대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결과는 완전실패였다.

지원자가 단 1명에 그쳤다.

둘째 높은 임금상승률.

태국 기술자의 임금수준은 해마다 30%씩 상승하고 있다.

셋째 태국시장이 외자에 완전 종속될 가능성도 있다.

GM이 대표적인 예다.

GM은 자사가 거래해온 해외 부품공급 업체 30곳을 태국으로 끌어들일
계획이다.

이런 움직임이 모든 외국자동차 업체들로 확산될 경우 태국의 자동차
산업은 고사당하게된다.

그럼에도 태국이 당분간 동남아 자동차 산업의 왕좌를 고수할 것으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점치고 있다.

이웃 경쟁국들이 자국산업 보호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경우 대외적으로 개방정책을 내걸고는
있으나 실제로는 폐쇄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수입자동차에 대해 높은 관세를 매겨 빈약한 국민차
"프로톤"모델이 가격경쟁력을 얻도록 밀어붙이고있다.

인도네시아는 국민차 "티모르"에 대한 각종 특혜성 면세정책을 고집하는
바람에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WTO에 제소당할 위기에 처했다.

태국의 경쟁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라이벌국가들이 국민차 사업에 연연하는 동안 더많은 외국기업들이
태국으로 몰려들 것이고 이는 자동차 산업 레이스에서 태국의 독주를
가속화시킬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 김혜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