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로 과천이전 10주년을 맞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임영방)이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전시기획력 부족과 관리능력의 부재 등 파행운영을
거듭하고 있어 미술계 안팎의 비난을 사고 있다.

그동안 인사행정관리상의 허점과 전시를 둘러싼 불협화음으로 끊임없이
잡음을 일으켜온 국립현대미술관은 최근 다시 대표적인 현대미술관으로서의
품위와 위상을 결정적으로 손상시키면서 공공미술관 본연의 기능수행마저
의심케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따라 미술계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파행운영을 더이상 두고
볼수만 없다며 대대적인 수술을 촉구하는 글과 성명서를 잇달아 발표,
본격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미술평론가 최석태씨가 "가나아트" 7.8월호에 미술관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비판한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언제 햇볕이 들까"를 기고한데
이어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 오광수)도 지난 23일 "국립현대미술관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라는 성명서를 내놓은 것.

평론가협회는 일찌기 인기영합적인 전시기획과 졸속전시, 예정된 행사의
마구잡이 취소.변경, "휘트니비엔날레"처럼 미국작가들의 국내전을 앞장서
보급하는 등 상식이하의 운영으로 불신을 자초해온 국립현대미술관이
급기야는 총체적인 난맥상을 보이고 있어 성명서를 발표하게 됐다고
밝혔다.

평론가협회는 성명서에서 지난 7월 소장작가들에게 저작권양도를
요구하는등 저작권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로 물의를 일으켰던
미술관이 불과 1달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제2회 "올해의 작가전"선정을
둘러싼 납득할수 없는 처사로 미술인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술관은 뿐만아니라 지난 9일부터 열고있는 "대상수상 작가전"에
89년 제12회 중앙미술대전 한국화대상을 수상한 김훈씨(30)의 근작을
소개하면서 동명이인인 원로서양화가 김훈씨(72)의 작품을 걸어
또한번 망신을 당했다.

미술계에서는 두 작가의 장르가 확연하게 틀린데다 작품경향 및 기법,
재료마저 판이하게 다른데도 이같은 착오가 빚어진 것은 일반화랑에서도
있을수 없는 일이라며 미술관측의 주먹구구식 운영을 꼬집고 있다.

이같은 사례는 특히 그동안 파행적인 인사정책 때문에 전문인력을
제대로 양성하지 못해온 것과 무관치 않다게 중론.

실제로 92년이후 근무여건에 대한 불만과 직원들간의 갈등으로 9명의
큐레이터가 미술관을 떠났다.

따라서 남아있는 학예연구원의 대부분이 경력3년이하의 초보자들이어서
전문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으며 이들마저 직급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있어
사기가 저하돼 있다는 것이다.

평론가협회는 "현재까지 도출된 일련의 사태들을 전혀 우연한 일로만
볼수 없다"고 지적하고 "무사안일에 빠진 미술관측의 태도는 체계적인
문화정책의 결여에서 빚어진 것인만큼 상급기관인 문화체육부의 관리감독
소홀에도 책임이 있으며 앞으로 정상운영을 위해 뼈를 깎는 자성과 함께
대대적인 수술이 뒤따라야 할것"이라고 강조했다.

< 백창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