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및 5.18사건의 주역인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과 신군부들에게
유죄가 선고됨으로써 이들이 지난 80년 한국 현대사를 오욕과 퇴보로
점철시킨 죄인으로 규정됐다.

또 이들에 대한 유죄판결로 성공한 쿠데타적 사건에 유죄를 내렸다는
첫 사법적 선례를 남겼으며 이들이 창출한 5공정권의 정통성도 정면으로
부인됐다.

특히 우리 정치사에서 언급조차 금기시돼온 정권 창출 과정의 불법성및
폭력성 문제를 사법부가 유죄로 인정함로써 잘못된 과거사 청산작업이
일단 마무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이번 사건의 역사적 청산과 더불어 관련자들에
대한중형 선고로 후세에는 다시는 이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게 사법부의 판단"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12.12, 5.18사건은 지난해 7월 1년여동안의 5.18광주 민주화운동
고소, 고발사건의 수사에서 "성공 쿠데타 이론"등을 근거로 관련자
58명 전원에 대해 "공소권 없음"의 불기소 결정이 내려졌던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한 전기는 지난해 10월 노씨의 4천억원
비자금설이 터져 나오면서 5.18특별법이 제정되고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하면서부터. 이후 기소및 재판 과정은 우여곡절과 파행의 연속이었다.

5.18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변호인측의 집단사임등 지연전략으로
인해 선고까지의 과정은 지난한 작업이었다.

방대한 사건기록과 수많은 쟁점을 가진채 지난 3월 11일 첫 공판을
시작, 26일의 선고공판까지 1백68일 동안 28차례에 걸친 재판과정에서
검찰, 변호인의 치열한 법정공방을 결론 내리는 재판부 또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야만 했다.

재판부는 검사의 기소유예 결정을 번복하고 공소제기를 것에 대해
특별법 제정등 사정변경에 의한 것으로 적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승화육참총장의 연행은 대통령 재가없이 이뤄졌으며 구속영장없이
집행돼 정당성이 결여됐다고 보고 10.26사건의 관련혐의 조사명목을
내세운 신군부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내란죄 혐의에 대해 피고인들이 계엄령, 포고령등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억압하는 것은 국헌을 문란케 할 목적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또 국가기관인 국무회의장과 국회에 병력을 배치해 국가권력에
반항하고 이에 항의해 광주에서 시위가 발생하자 병력을 동원하여
제압한 행위는 반란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이번 판결로 자위권 발동이 사실상의 발포명령이 이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자위권 발동은 실탄이 이미 지급된 상태에서 발포촉구 기능을
한 거나 다름없는 실질적 발포명령으로 보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내란목적 살인죄로 기소된 정호용, 황영시피고인등에
대해 구체적인 혐의사실을 입증하거나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해 5.18유족등의 강한 반발이 우려된다.

또 1심은 정총장 연행 재가와 최규하 전대통령 하야과정의 강압성
여부, 5.18발포 책임자 규명 미흡등 쟁점의 진위를 가리지 못하고
핵심증인인 최전대통령의 증언을 이끌어 내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로 질곡과 오욕으로 점철된 과거 역사에 대한
대청소를마무리짓고 이제 새로운 출발을 향한 국민적 화합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입을모으고 있다.

12.12,5.18사건은 우리가 지불해야 할 코스트인 동시에 미래 국가사회
운명을 좌우하는 시금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은구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