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업체 H사는 지난 93년부터 3년에 걸쳐 수원 마산 대구 등지의 방적
설비를 인도네시아와 중국등으로 옮겼다.

생산라인중 10%인 5만~6만추만 국내에 남겨 두었다.

이 회사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한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고임금"에 있었다.

나날이 높아가는 인건비로 적정 생산비용을 맞추기 쉽지 않았던 때문이다.

그러나 H사는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알파"를 얻었다.

그건 딴게 나니었다.

단일하고 투명한 외국의 임금구조를 따르다 보니 한국에서 보다 훨씬 사업
하기가 쉬워진 것.

"국내에 공장이 있을 때보다 인건비가 줄어든 것은 물론 노무관리 비용도
덜 들게 됐다. 무엇보다 이것저것 신경쓰지 않아서 좋다"(H사 해외사업팀
C이사)

한국기업의 해외탈출은 대부분 국내의 "xx수당" "xx선물"등 복잡한 임금
구조에 기인하는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고비용구조, 그중에서도 고임금에 기인한다.

단순 고임금이라면 그대로 괜찮다.

한국을 떠나며 해외로 나간 기업이 "복잡한 세상살이"를 안해서 좋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번 해외에서 공장을 가동해 본 사람은 누구나 국내보다는 외국을 생산
기지로 선호하게 돼 있다"(C이사)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신발 섬유등 성숙업종뿐만 아니라 반도체등 국내의 고임금 상황에서 아직도
버틸 수 있는 업종까지 모두 "해외로, 해외로" 진출하는 것만 봐도 단순
임금구조가 주는 매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말레이시아 셀렘방에 위치한 삼성전자소그룹의 복합단지를 예로 들어보자.

삼성전자.전관.코닝등 전자계열사 공장이 입주해 있는 이곳의 근로자수는
모두 7천여명.

이중 한국에서 파견된 주재원은 20명에 불과하다.

셀렘방 복합단지의 인사담당자인 김명진차장은 "노무관리가 단순하기
때문에 그다지 많은 주재원이 필요없다"고 말한다.

한국과 비교하면 "노무관리랄 것도 없는 말뿐인 관리"라는게 김차장의
설명이다.

이것이 가능한 건 단순.명쾌한 임금체계 덕이다.

현지 근로자들은 입사할 때의 학력에 따라 초임이 결정된다.

초임은 물가상승률 등을 반영해 2~3년마다 사회 전체적으로 인상된다.

이같은 기본급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회적으로 정해진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그래서 고졸학력의 근로자를 채용하고자 할땐 셀렘방공단에 있는 기업들
모두가 예외없이 기본급 1백44달러를 지급하고 1년에 기본급의 2백%를
보너스로 주면 그뿐이다.

셀렘방 공단에서도 수당이 있긴 하다.

그러나 수당의 종류가 우리네처럼 수십가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외수당과 출퇴근수당, 만근수당(결근을 하지 않을 때 지급하는 것)등이
전부다.

국내 근로자들의 월급명세서에 찍혀 나오는 직무환경수당 반생산회의수당
생산장려수당 운동수당 등은 말레이시아 근로자들에게는 낯설다.

임금체계가 이렇게 단순하다 보니 임금협상도 간단하다.

해마다 기본급이 인상되는건 한국과 같지만 절차는 판이하다.

한햇 동안의 개인 업무능력을 평가한뒤 A B C등으로 개개인의 등급을
매기고 이에따라 기본급을 차등인상한다.

예컨대 올해말에 업무평가를 통해 A등급을 받는 사람은 내년부터 12%
인상된 기본급을 받는다.

B등급은 8%, C등급은 6%씩 각각 인상된다.

해당부서장들이 개개인의 업무능력을 체크해 등급을 매긴다.

한국처럼 노사협상을 통해 일률적으로 기본급을 인상하는 방식은 찾아볼수
없다.

더구나 국내기업들이 기본급 O%, 상여급 O%, 수당 O%등 수십가지 항목에
대한 교섭을 번거롭게 진행해야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한달이 넘게 걸리는 협상으로 때론 불량품이 양산되고 심지어 라인이
서버리는 일은 애초부터 있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삼성셀렘방 복합단지의 김차장은 "단체협상이 아니라 개별협상으로 임금
인상률이 정해지기 때문에 근로자 개개인의 업무성취도가 빨리 올라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또 "임금관리가 쉽다는 점이 해외로 진출하는 기업들의 큰 메리트로 작용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임금에 더해 임금구조의 복잡성은 지루한 임금협상에 "지친" 국내기업들
을 해외로 몰아내는 중요한 요인으로까지 부상하고 있다.

"임금관리가 간단하고 생산성에 반영되는 임금구조 또한 해외진출의 메리트"
(H그룹 K이사)라는 지적대로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임금구조는
그 자체로 한국기업 "해외탈출"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 장진모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