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에 사는 회사원 김모씨(28)는 자신의 자취방을 "고물창고"
라고 말한다.

집안에 들여놓은 가전제품이 온통 중고품 일색이어서다.

텔레비젼은 지난봄 한 재활용센터에서 4만원에 구입한 것이고,
비디오 냉장고 세탁기 역시 뒤이어 10만원 안팎의 헐값에 사들인
구닥다리들이다.

물론 성능은 신제품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텔레비젼은 리모콘이 잘 작동되지 않아 채널 하나를 아예 포기한
상태다.

냉장고는 심심찮게 윙윙대고 세탁기는 덜덜거리기 일쑤다.

하지만 김씨는 "쓸만하다"고 말한다.

작년초 쓰레기종량제가 실시되면서 김씨처럼 재활용센터를 애용하는
단골이 늘고 있다.

객지에서 자취하는 대학생이나 결혼을 앞둔 회사원, 내집마련을 위해
절약해야 하는 서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요즘엔 중류층에서도 일시적으로 사용할 가전.가구류를 사러 재활용
센터를 찾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재활용센터의 최대장점은 저렴한 가격이다.

텔레비젼(14-20인치)은 4만-8만원, 냉장고(180-370리터)는 5만-15만원,
세탁기(전자동,5-6kg)는 9만-13만원선이다.

재활용센터에서 가장 비싼 품목인 장농의 경우 새로 도장한 제품이라도
15만-25만원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생활정보지에 나온 중고 가전.가구류도 이 정도의 값이면 살 수 있다.

그러나 재활용센터에서 구매할 경우엔 정보지를 통한 직거래에 비해
두가지 면에서 이롭다.

다양한 제품 가운데 고를 수 있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6개월간 애프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장점이다.

이런 장점을 무기로 재활용센터는 중고품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해가고
있다.

1년여전부터 대형생활폐기물의 원활한 처리 및 재활용을 명목으로
시.군.구마다 하나씩 설치돼 이제는 서울 24개소를 포함, 100개소가
넘는다.

이 센터는 낡은 가전.가구류를 처분하려는 이들에게도 유용한 곳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형생활폐기물을 폐기하려면 동사무소에 신고, 5,000-1만5,000원의
수거료를 내야 한다.

그러나 재활용센터에 연락하면 무료로 수거해간다.

전국적으로 78개의 재활용센터를 두고 있는 전국 가전가구 재활용
협의회의 김태용 상임고문은 "재활용센터는 폐기처분될 가전.가구류의
수명을 연장함으로써 경제적 손실을 막고 쓰레기발생량을 줄이는 역할도
한다"고 말한다.

재활용센터가 "서민들의 알뜰시장"으로 살아남기 위해 풀어야할
과제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홍보부족과 주민들의 이해부족이 문제로 꼽힌다.

재활용센터에서 일하는 이들은 "주민들이 지역에 재활용센터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 "재활용센터에 신고하면 무조건 수거해 가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구로재활용센터의 윤욱렬소장은 "잔재물(재활용센터에서도 쓸 수
없어 폐기하는 제품이나 부품) 처리도 골치거리"라고 지적한다.

재활용하기 위해 선별적으로 수거한 제품이라도 10개중 2개꼴로
그냥 버리게 되는데 무료로 수거한뒤 돈내고 처분한다면 불합리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재활용협의회의 김고문은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재활용센터를
설립하겠다는 회원이 늘고 있는 것은 장기적으로 전망이 밝기 때문"
이라면서 "재활용센터가 알뜰시장으로 자리잡을 날도 멀지 않다"고
말했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