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면활성제.

흔히 듣는 물질의 이름이다.

그러나 막상 이 물질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계면활성제란 한마디로 공산품에 쓰이는 "약방의 감초"와 같은
것이다.

일례로 아이스크림이 얼음과자인데도 부드러운 까닭은 계면활성제를
넣었기 때문이다.

거친 피혁에 계면활성제처리를 하면 젊은 여자의 피부처럼
부드러워진다.

이처럼 이제 계면활성제는 약방의 감초격을 넘어서 첨단식품과
공산품을 만드는 필수품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첨단물질을 만드는 기업가운데 세계 4번째기업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신유화가 바로 그 업체다.

이회사의 청주공장은 대지 2,000평의 큰 공장이다.

이곳에서는 비이온 계면활성제를 만든다.

이 공장은 이 분야에서 국내최대규모이지만 이렇게 큰 공장에서
생산부문에 근무하는 종업원은 4명뿐이다.

이들 4명중 3명은 포장부문에 일을 하고 있어 실제 생산현장에
근무하는 사원은 1명뿐인 셈이다.

그나마도 중앙제어 컴퓨터실에 근무한다.

이처럼 공장 근무자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공장 전체를 완전히
자동화한 덕분이다.

이공장이 남다른 것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공장옆에 있는 연구소에는 박사 및 석사연구원 15명이 근무한다.

연구원 15명에 공장근무자 1명이란 국내기업으로서는 상상을 넘어선
인력구조이다.

일신유화가 이처럼 기술연구와 자동화부문에서 남다른 조직을 가지고
있는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지난 85년의 일이다.

이회사의 윤동훈사장(56)은 김포읍에 있는 계면활성제 설비를 개체하기
위해 이 분야 권위자인 일본의 요시노사장을 초청했다.

김포공항에 나가 요시노사장을 맞이해 곧장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을 둘러본 요시노사장은 무척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 회사의 기술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자 요시노사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건 일본에서 적어도 20년전에 쓰던 수준입니다"

이 대답을 듣고 윤사장은 너무나 수치감을 느꼈다.

그래도 국내에서는 가장 우수한 제품을 만든다고 자부해왔는데
20년전 수준이라니.

윤사장은 요시노사장을 보낸 뒤 며칠간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일단 일본의 공장을 찾아가 최신설비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윤사장은 이때 요시노사장에게 당한 수치심을 잊지 않았다.

언젠가는 일본보다 나은 기술을 가진 공장을 짓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 창피를 당한뒤 꼭 10년만인 지난해 드디어 청주에 세계최고수준의
공장을 지은 것이다.

더욱이 청주공장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은 이 분자선별증류방식의
첨단계면활성제 제조공법이 일본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일신유화연구소가 공동으로 개발해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윤사장이 자동화분야에 이렇게 과감히 투자를 한 것은
지방중소기업들이 갈수록 인력난을 심하게 겪고 있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일신유화 청주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30%만 국내에서 판다.

70%는 해외에 수출해야 한다.

따라서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면 시장을 잃게 된다.

때문에 윤사장은 한달에도 몇차례씩 동남아시장을 찾아나선다.

그는 한국과학기술원과 공동으로 1억2,000만원을 들여 미생물을
이용한 지방분해로 모노구리세라이드를 만드는 공정을 특허출원하기도
했다.

계면활성제는 순도가 높은 것이 생명이다.

순도가 80%를 넘어서면 좋은 제품으로 꼽힌다.

그러나 일신유화의 제품은 순도가 95%에 이른다.

이처럼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린데는 윤사장의 남모르는 피땀이
숨겨져 있다.

윤사장은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전형적으로 겪는 기술부족 및
인력난과는 거리가 먼 업체로 성장해가고 있다.

< 이치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