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형수님도 내가 언제 형수님이 대접하는 술을 술이 아니라고
했나요?

그때는 몸이 좀 피곤해서 술을 사양했던 것이지요"

설과가 취중에도 금계의 표정을 살펴가며 변명을 하기에 급급하였다.

보섬은 또 금계가 설과를 꼬드기려고 수작을 부리는 것을 알고 입을
비쭉이며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럼 오늘은 술을 마셔도 되는 날인 모양이죠?

내가 정식으로 술 대접을 하고 싶은데 어때요?

조금 있다 내 방으로 올래요?"

금계가 눈웃음을 치며 설과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가 놓았다.

설과는 그 동안 금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조심해왔으나
술기운이 들어가자 마음이 사뭇 대담해졌다.

술 대접까지 거절하면 형수님이 서운해 할 거야.

그러니 술을 몇 잔만 마시고 나오지 뭐.

형수님이 또 나를 유혹하려고 하면 그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해보기로
하지.

"전에 보섬이 편으로 보내준 술을 사양하여 늘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
없었는데 오늘은 설반 형님 일이 잘 된 것을 축하할 겸 형수님의 술
대접을 받도록 하지요.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세수를 좀 하고 형수님 방으로 가겠습니다"

설과는 설반의 이름을 슬쩍 들먹임으로써 금계의 마음 가운데 있는
음심을 일단 다독이려고 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금계의 귀에 남편 설반의 이름이 들어올 리 없었다.

금계가 꽃무늬가 화려하게 박힌 손수건을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집어
함박웃음 꽃이 핀 입을 가리며 상체와 하체를 따로 비비 꼬면서 애교를
떨었다.

"그러세요. 나는 술상을 준비해놓을게요"

금계가 통통 튀는 걸음으로 방으로 들어가 보섬으로 하여금 술상을
간단하게 차리게 하였다.

술상이 다 차려진 후 보섬과 다른 시녀들을 내보내고 금계 혼자 방에
아 설과가 오기를 기다렸다.

오늘밤은 기어코 설과가 나를 안도록 하리라.

그런 생각만 하여도 금계는 온몸이 달아오르고 숨이 가빠졌다.

금계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자기 젖가슴을 매만져보기도 하고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어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금계는 시녀들로 하여금 방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다시금
엄명을 내리고는 방문 고리를 젖혀놓은 채 옷을 하나씩 벗어나갔다.

내 벗은 알몸을 본다면 어떤 남자이든 넘어가지 않을 자가 없을거야.

얼마나 희고 탐스러운 몸인가 말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알몸을 보이면 설과 같은 숙맥은 기겁을 해서 오히려
도망을 가겠지. 금계는 큼직한 겉옷을 걸치고 언제라도 알몸이 될 수 있는
준비를 갖췄다.

마침내 설과가 정말 세수를 했는지 아까보다는 훨씬 말끔해진 얼굴로
금계의 방으로 들어섰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