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장벽이 붕괴되던 1989년 11월9일부터 동서독이 하나로 통일된
1990년 10월3일까지 329일동안 독일통일을 둘러싸고 서방 각국들이 벌였던
치열한 물밑협상의 전모를 담은 책이 출판됐다.

엄효현한국방송개발원원장(58)이 독일통일의 전과정을 막후에서 지켜본
호르스트 텔칙 총리외교안보보좌관이 당시 언론및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비화를 일기형식으로 재구성한 "329일-베를린장벽 붕괴에서 독일통일까지"
(고려원간)을 번역, 출간한 것.

"독일주재 한국대사관 공보관으로 근무한 인연때문인지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입수하게 됐습니다.

그러던중 대북 쌀지원문제와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던 지난3월 청와대
고위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책 얘기를 했더니, 우리 현실에도 적잖은
참고가 될 것같은데 정식으로 번역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게
됐지요" 엄원장은 저자에게 한국어판 발행 의사를 편지로 의뢰했더니 흔쾌히
수락하더라고.

"많은 사람들이 독일통일의 실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과정이 우리의
당면과제를 풀어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독일통일을 둘러싼 여러 협상의
이면들을 다룬 이 책은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원장은 우선적으로 통일을 바라보는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독일과
우리는 상당히 큰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경우 통일이 된다고 생각한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민족간의 단절로 인해 초래되는 인간적인 불편과 고통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데 온 힘을 다쏟았지요.

우리의 경우는 완전히 거꾸로입니다.

현실적인 접근은 하나도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통일에 대한 분명한
결론만 내려놓고 그 당위성을 논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통일정책방향을 세운 뒤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실행해나가는 독일에 비해 일관성과 계획성이 부족한 우리의 방식은
비판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와 학자, 국민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반성해야 할 것이라는
엄원장은 이어 동서독의 통일로 인해 유럽평화의 와해를 우려한 각 나라들을
독일이 어떻게 설득해갔는지도 차분히 살펴봐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장벽이 열렸다" "콜의 10개항 계획" "모스크바에서의 청신호" "통일을
위한 촉매로서의 차관제공과 상호협력"등 총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89년
11월9일부터 각국 정상들과의 대화, 이들의 통독에 대한 반감과 우려,
그리고 그들의 설득해가는 콜총리의 진지한 자세등을 매일매일의 일기속에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다.

외국어대와 독베를린자유대를 나온 엄원장은 67년부터 20여년동안 언론사
독일특파원과 독일대사관공보관을 지냈다.

90년 귀국해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거쳐 94년부터 한국방송개발원장으로
재직중이다.

<김수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