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 SP1팀의 이도훈대리(33)는 자신을 창조주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일은 천지창조인 셈이다.

무슨 일을 하는가?

가장 최근에 한 일은 삼성물산 창립58주년 기념축제기획이다.

"창립 기념행사?

에이, 시시한데..."라는 생각은 곧 사라진다.

그것은 몇천평짜리 강당에 수만명의 사람을 모아놓고 3시간 넘는 쇼를
펼치는 일이다.

초등학교 애국조회가 아니다.

지루한 연설의 장도 아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질 화려한 무대가 필요하다.

이대리는 우선 주제를 정한다.

볼케이노.

화산 밑의 용암이 분출하듯 삼성물산의 폭발적인 성장을 상징하는 주제다.

무대배경은 여기에 맞춰 화산으로 하고, 굵직굵직한 메인 행사가 같은
주제로 들어간다.

연예계 클래식음악계 연극계 무용계 미술계.

모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적당한 사람, 혹은 극단을 쓰려면 최소한 누가 있는지는 알아야 하니까.

창조주는 대범하면서도 섬세해야 하는 법.

사회자가 설 단상의 위치와 조명의 밝기까지 현장에서 바로 바로 지시한다.

웬만한 역량과 카리스마 없이는 힘든 일이다.

이대리가 가장 뿌듯할 때는 그의 "천지"와 관객들이 만나는 순간.

그의 무대에 동참해 웃고 즐기고 감동하는 고객들을 볼 때 그 동안의
노고와 고생이 눈녹듯 사라진다고 한다.

이대리는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출신으로 제일기획에도 원래 그래픽디자인
부분으로 입사했다.

그가 SP1팀으로 옮긴 것은 입사 3년째인 93년 7월.

"이벤트가 너무나도 하고 싶어"

이벤트담당 SP로 지원한 그는 곧바로 대종상영화제, 한솔그룹 CI선포식,
카운트다운 콘서트 등 큰 무대를 잘 소화해내 SP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환경보호를 주제로 한 삼성전자 그린홈콘서트, 여름문화축제 "파라오의
눈물"뮤지컬 콘서트도 독특한 연출로 주목받은 그의 작품.

지금은 DKNY 토털프로모션 준비에 바쁘다.

"일이 좋아 일에 사는" 워커홀릭(workaholic) 신세대인 그는 SP란 일을
이렇게 간단히 설명했다.

"시간과 공간만이 주어진다.

그 안의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