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본 스탬프 애프터 청맥"

라오스의 대우건설 댐공사 현장으로 들어가려면 태국변방 우본라차타니시
공항 출구에서 먼저 이 해괴한 "국제어"를 외쳐야 한다.

풀이하면 "피본"이라는 동네에서 태국출국도장(스탬프)을 받은후(애프터)
라오스입국 검문소가 있는 "청맥"까지 가자는 말이다.

이 말을 꺼내야 우본라차타니에서 헤매지 않고 택시기사와 요금 흥정에
들어갈 수 있다.

대우건설은 라오스남부 산골의 호웨이호하천 유역에서 댐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호웨이호댐으로 가는 길은 라오스 북부에 있는 수도 비엔티엔을
향하는 통상적인 경로와 다르다.

태국 남서부 변방의 한적한 공항에서 "피본 스탬프..."를 외쳐야 지름길이
나오는 것이다.

이곳 택시기사들은 태국 돈으로 800바트(한국돈 2만5,000원정도)이상을
손에 쥐어야만 북한군복 비슷한 옷을 입은 라오스 입국심사관이 기다리는
청맥검문소까지 데려다 준다.

다음 목표는 라오스 제3의 도시 팍세.이 도시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는
대우건설 지사가 중간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이 닦아 놓았다는 낡은 도로를 4시간정도 가다
보면 메콩강을 볼 수 있는데 팍세는 바로 강 건너편에 있다.

서울시의 한개 동만도 못한 작은 도시지만 그래도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만들어 놓은 국내선 비행장이 유산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팍세에서 또 자동차로 3시간반이상을 달려가면 해발 1,000m의 고지대
원시림속에서 대우건설의 현장캠프를 볼 수 있다.

대우건설이 이 원시림속의 하천유역에 세우고 있는 호웨이호댐은
BOT조건이 적용되는 공사다.

건설주체인 대우가 댐을 건설(Build)해 30년간 운영(Operate)하면서
공사비를 뽑아내고 라오스정부에 이전(Transfer)하는 조건이다.

한국 건설업계에서 BOT조건으로 해외공사를 수주한 것은 이 라오스댐이
최초다.

이렇게 한국의 해외건설사상 독특한 의미를 지닌 호웨이호댐은 라오스에선
제4호댐이다.

6억t정도인 예상 저수량으로 따져보면 한국 안동댐 규모지만 라오스에서는
두번째로 큰 댐이 된다.

라오스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다.

영토는 남한의 1.5배지만 인구는 서울시 인구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490만명에 불과하다.

자원도 보잘 것 없는 나라다.

따라서 라오스 정부는 수자원을 중요한 외화수입원으로 삼고있다.

대우건설의 경우처럼 외국 건설업체에 BOT방식등으로 수자원을 팔아
외화수입을 올린다.

이같은 수자원 장사도 90년이후의 개혁 개방정책으로 조심스럽게
이루어져 아직도 초보단계에 불과하다.

대우건설은 이 댐건설에 약2억달러를 투자해 현재 45%의 공사진척률을
기록하고 있다.

내년6월께까지 토목공사를 완공하고 2년간에 걸쳐 우기동안 댐에 물을
가득 담게 되면 바로 전력을 생산해 투자비 건지기에 나선다는 계산이다.

"운영기간이 30년이지만 7년안에 투자비를 다 건진다는 계획아래
BOT건설을 결정했습니다"

호웨이호댐의 기획을 담담했던 유태성 대본엔지니어링사장은 생산되는
전력을 전량 태국에 파는 계약이 체결됐다고 밝혔다.

그는 투자에 앞서 과거 42년간의 강우량과 라오스 현지의 정치경제상황및
소비지인 태국의 소비자물가등 온갖 변수를 다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사에서는 장비수송이 가장 힘든 난관이었습니다"(김정식
대우건설과장)

내륙 원시림지역에 댐을 건설하다보니 중장비를 태국에서 육로를 통해
들여와야했는데 중장비가 메콩강과 그 지류를 통과하는 것 자체가
대공사였다는 말이다.

따라서 댐공사에 앞서 장비수송을 위해 원시림에 길을 내는데 엄청난
돈과 시간이 투입됐다.

또 대우의 호웨이호댐 공사는 투자비절감을 위해 세계 9개국의 노동력과
기술이 동원된 "다국적인력"공사로도 유명하다.

대우건설의 한국인력(현재는 20명정도)을 중심으로 라오스현지인과
필리핀 태국 파키스탄 남아공화국 짐바브웨등 9개국에서 700명이
달라붙었다.

한국인력은 관리감독이며 필리핀및 파키스탄인력은 주로 중장비를 맡고
있다.

"보수가 높다며 라오스의 지식층인 교사들까지도 일자리를 얻으려고
공사현장을 찾아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신동인 노무과장)

대우건설의 댐 건설로 라오스남부의 지도가 바뀌면서 현지의 지역사회에도
큰 변화를 줄 것이기 때문에 비엔티엔 중앙정부의 고위층들까지 댐 건설
현장을 자주 방문할 정도로 관심이 많다.

원래 라오스는 베트남과 태국에 각각 안보와 경제를 의존해온 폐쇄적인
나라다.

그러나 대우가 호웨이호댐을 30년 BOT 조건으로 건설함으로써 한국과도
끊어질 수 없는 연을 맺은 것이다.

< 양홍모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