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교통체계 구조적 모순 .. 이영선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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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선 <연세대 교수 / 경제학>
필자는 얼마전 학생들과 함께 신촌역에서 경의선을 탄 일이 있다.
이때 경제학을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몇가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우선 신촌역에 도착하자마자 서울의 한복판에 아직도 이런 시골 모습이
있다는 점에 놀랐다.
신촌역 주변에는 온갖 첨단 유행이 판을 치는 상가들이 즐비한데 비해
이 기차역은 일제 시대의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았다.
기차표를 사는 순간 기차표 값이 의외로 싸다는데 또 한번 놀랐다.
한 시간 걸리는 거리의 기차삯이 400원에 불과했다.
세번째로 놀란 것은 기차를 보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흔히 북한의 경제적 낙후성을 보여주기 위해 TV에 방영하는
북한의 기차모습과 결코 다를 바 없는 기차가 우리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 쇳덩어리가 우리를 안전하게 태워다 줄지 의구심이 들었다.
다행히 그 기차는 우리를 정확히 제시간에 목적지에 데려다 주었다.
도착역에서 우리는 자동차를 몰면서 온갖 고생을 하며 온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이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육체적 정신적 고생을 하면서 온 것에
비하면 너무도 싼 기차여행이었다.
우스운 소리지만 아직도 어떤 일본인들은 일본이 일제 36년동안
한국경제성장의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흔히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기간 동안에 건설해 놓은 한국의 철도체계가
그 주장의 근거로 거론된다.
그 주장과 논거가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들이
철도체계를 들먹일 때마다 우리는 왠지 개운치 않은 느낌을 갖게 된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몇 개의 간선 철도가 복선화된 것을 제외하고는
철도체계에서 이렇다 할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고철과 다름없이 보이는 경의선 기차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물론 그동안 우리는 철도 대신에 고속도로 체계를 건설했다고 이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과 같은 여건에서 교통체계를 철도보다 자동차에
의존하는 것이 효율적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자동차를 위주로 한
교통체계, 즉 고속도로 체계는 미국과 같은 국가에나 어울리는 것 같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넓고 인구밀도가 낮기 때문에 지역과 지역 사이의
교통 단위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럽이나 일본과 같이 인구밀도가 높고 역사가 깊어서 군데군데
인구 밀집지역이 형성되어 있는 나라는 인구밀집지역 사이의 교통 단위가
클 것이기 때문에 기차와 같은 대단위 교통 수단이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한국은 분명히 이 점에 관해서는 미국보다는 유럽이나 일본과 같은
상황에 있다.
따라서 한국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철도를 건설하는 것이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보다 급선무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고 고속도로의 건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도로와 철도가 조화를 이루며 발전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자동차 위주의 교통체계가 이루어진 결과 오늘날 우리가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교통혼잡을 겪는 것이 아닌가.
철도건설에 보다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다면 지금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높은 물류비용문제는 완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철도에 적절히 투자해 오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재정문제였다.
철도교통은 서민교통으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에 철도요금이 몹시 낮게
유지되어 왔다.
더욱이 물가상승 압력이 있을 때마다 공공요금인 철도요금의 인상은
억제되어 왔다.
그 결과 재정문제는 더 어렵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교통체계의 구조적
왜곡은 더욱 확대되어 온 것이다.
이제 이러한 문제는 교정되어야 한다.
적절한 요금이 책정되어야 하고 또 그 요금에 적합한 서비스가 공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차요금 수입만으로 철도에 대한 투자비용을 모두 충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재정의 뒷받침은 불가피할 것이며 여건이 허락하는 한
일부노선의 민영화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이야기이지만 경부고속전철의 건설은 아무래도
그 효과에 비해 비용이 과다한 것 같다.
지금의 경부선을 개선하여 경부선의 소요시간을 어느정도 단축시키고
나머지 자원으로 전국 각지를 보다 체계적인 철도망으로 연결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동서고속전철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동해안지방이 철도로 서울과 연결되어 있지 않는 것은 분명히 큰
문제이다.
그러나 동해안과 서울 사이의 교통은 주로 관광교통이므로 구태여
최고속일 필요는 없다.
보다 높은 질의 서비스 공급이 오히려 중요시되어야 할 것이다.
철도교통을 장려함과 동시에 자동차교통을 억제하는 정책이 구사되어야
한다.
최근 자동차 사용을 억제하기 위한 휘발유세의 인상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퍽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물가상승이라는 단기적 과제를 이유로 휘발유세의 인상에
반대하는 견해도 들리고 있다.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싼 휘발유값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싼 휘발유 값은 과다한 휘발유 소비를 초래하여 교통의 혼잡은 물론
국제수지의 적자와 환경오염을 야기한다.
물가안정이란 결국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를 효율화하자는 것인데
물가안정을 이유로 휘발유값을 낮게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가격구조를
왜곡시켜 장기적으로 자원을 낭비하게 하여 경제를 비효율화하는 모순을
지닌다.
우리 경제의 고비용-저효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교통체계를
재점검하고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모색해 볼 때가 되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일자).
필자는 얼마전 학생들과 함께 신촌역에서 경의선을 탄 일이 있다.
이때 경제학을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몇가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우선 신촌역에 도착하자마자 서울의 한복판에 아직도 이런 시골 모습이
있다는 점에 놀랐다.
신촌역 주변에는 온갖 첨단 유행이 판을 치는 상가들이 즐비한데 비해
이 기차역은 일제 시대의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았다.
기차표를 사는 순간 기차표 값이 의외로 싸다는데 또 한번 놀랐다.
한 시간 걸리는 거리의 기차삯이 400원에 불과했다.
세번째로 놀란 것은 기차를 보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흔히 북한의 경제적 낙후성을 보여주기 위해 TV에 방영하는
북한의 기차모습과 결코 다를 바 없는 기차가 우리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 쇳덩어리가 우리를 안전하게 태워다 줄지 의구심이 들었다.
다행히 그 기차는 우리를 정확히 제시간에 목적지에 데려다 주었다.
도착역에서 우리는 자동차를 몰면서 온갖 고생을 하며 온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이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육체적 정신적 고생을 하면서 온 것에
비하면 너무도 싼 기차여행이었다.
우스운 소리지만 아직도 어떤 일본인들은 일본이 일제 36년동안
한국경제성장의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흔히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기간 동안에 건설해 놓은 한국의 철도체계가
그 주장의 근거로 거론된다.
그 주장과 논거가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들이
철도체계를 들먹일 때마다 우리는 왠지 개운치 않은 느낌을 갖게 된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몇 개의 간선 철도가 복선화된 것을 제외하고는
철도체계에서 이렇다 할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고철과 다름없이 보이는 경의선 기차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물론 그동안 우리는 철도 대신에 고속도로 체계를 건설했다고 이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과 같은 여건에서 교통체계를 철도보다 자동차에
의존하는 것이 효율적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자동차를 위주로 한
교통체계, 즉 고속도로 체계는 미국과 같은 국가에나 어울리는 것 같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넓고 인구밀도가 낮기 때문에 지역과 지역 사이의
교통 단위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럽이나 일본과 같이 인구밀도가 높고 역사가 깊어서 군데군데
인구 밀집지역이 형성되어 있는 나라는 인구밀집지역 사이의 교통 단위가
클 것이기 때문에 기차와 같은 대단위 교통 수단이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한국은 분명히 이 점에 관해서는 미국보다는 유럽이나 일본과 같은
상황에 있다.
따라서 한국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철도를 건설하는 것이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보다 급선무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고 고속도로의 건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도로와 철도가 조화를 이루며 발전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자동차 위주의 교통체계가 이루어진 결과 오늘날 우리가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교통혼잡을 겪는 것이 아닌가.
철도건설에 보다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다면 지금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높은 물류비용문제는 완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철도에 적절히 투자해 오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재정문제였다.
철도교통은 서민교통으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에 철도요금이 몹시 낮게
유지되어 왔다.
더욱이 물가상승 압력이 있을 때마다 공공요금인 철도요금의 인상은
억제되어 왔다.
그 결과 재정문제는 더 어렵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교통체계의 구조적
왜곡은 더욱 확대되어 온 것이다.
이제 이러한 문제는 교정되어야 한다.
적절한 요금이 책정되어야 하고 또 그 요금에 적합한 서비스가 공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차요금 수입만으로 철도에 대한 투자비용을 모두 충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재정의 뒷받침은 불가피할 것이며 여건이 허락하는 한
일부노선의 민영화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이야기이지만 경부고속전철의 건설은 아무래도
그 효과에 비해 비용이 과다한 것 같다.
지금의 경부선을 개선하여 경부선의 소요시간을 어느정도 단축시키고
나머지 자원으로 전국 각지를 보다 체계적인 철도망으로 연결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동서고속전철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동해안지방이 철도로 서울과 연결되어 있지 않는 것은 분명히 큰
문제이다.
그러나 동해안과 서울 사이의 교통은 주로 관광교통이므로 구태여
최고속일 필요는 없다.
보다 높은 질의 서비스 공급이 오히려 중요시되어야 할 것이다.
철도교통을 장려함과 동시에 자동차교통을 억제하는 정책이 구사되어야
한다.
최근 자동차 사용을 억제하기 위한 휘발유세의 인상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퍽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물가상승이라는 단기적 과제를 이유로 휘발유세의 인상에
반대하는 견해도 들리고 있다.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싼 휘발유값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싼 휘발유 값은 과다한 휘발유 소비를 초래하여 교통의 혼잡은 물론
국제수지의 적자와 환경오염을 야기한다.
물가안정이란 결국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를 효율화하자는 것인데
물가안정을 이유로 휘발유값을 낮게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가격구조를
왜곡시켜 장기적으로 자원을 낭비하게 하여 경제를 비효율화하는 모순을
지닌다.
우리 경제의 고비용-저효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교통체계를
재점검하고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모색해 볼 때가 되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