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업단축도 해보고 밀어내기 수출도 하고 있지만 재고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어차피 국내경기가 불황이니 뾰족한 대책도 없다.

하반기중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등 대형 건설사업 발주를 기대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인천제철 천무평영업
전무)

철강업계는 쌓여만 가는 재고로 지금 깊은 시름에 잠겨있다.

설비증설에 따른 공급과잉과 수요부진으로 이미 올초부터 철근과
H형강의 "눈덩이 재고"를 떠안았던 철강사들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실제로 철강제품 재고는 하반기 들어서도 계속 불어만 가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게 철근이다.

건축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철근 누적재고는 매달 10만t 정도씩
늘고 있다.

7월말 현재 철강 메이커에 쌓여 있는 철근재고는 총 66만2천t.

올 1월 23만6천t의 무려 3배에 달한다.

여기에 유통재고(약 35만t)까지 포함하면 국내 철근 재고수준은
1백만t을 넘는다.

역시 건축자재인 H형강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7월말 H형강 재고는 11만1천t이 쌓여 작년 같은기간의 두배 수준에
달했다.

철강경기 부진의 이유는 간단하다.

자동차 가전 조선 건설등 철강제품 수요업계의 경기가 나빠 동반하락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

여기에 올초 전기로 업체들의 신증설로 생산량이 전년동기에 비해 20%
가까이 늘어난 것도 재고누적을 부채질 했다.

결국 "공급과잉+내수부진=재고누증"이란 얘기다.

이같은 재고급증은 지난 상반기 철강업체들의 경영실적에 직격탄이
됐다.

대부분 업체들이 미미한 매출신장에 이익 급감을 감수해야 했다.

인천제철의 경우 매출이 3.8% 증가하는데 그쳤고 순이익은 49% 줄었다.

한보철강은 약9백억원의 적자를 냈다.

그나마 판재류를 생산해 괜찮다는 포철도 매출액이 2.9% 신장한데
반해 순이익은 6.9% 축소됐다.

그래서 요즘 철강업계에선 불황탈출을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다.

인천제철은 지난달 9일부터 매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조업을 중단하고
있고 환영철강은 공장 근무조를 3교대에서 2교대로 바꿨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인 포철도 하반기 신입사원채용을 대폭 줄이기로
하는가 하면 간부사원의 개인명의 법인카드를 폐지하는 등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재고소진을 위해선 출혈수출도 감수하고 있다.

인천제철 한보철강등은 하반기 철근 수출목표를 크게 높여잡고 월별
할당량까지 정해 수출을 독려하고 있다.

"비록 마진 없이 수출을 하는 것이긴 하지만 재고로 떠안고 있는
것보다는 비용측면에서 낫다는 판단"(인천제철 관계자)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제품을 내다 팔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하반기중에도 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기업들이 하반기 설비투자 계획을 축소조정하고 있는 데다 건설경기도
호전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철강경기는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가능성이 적다"(동국제강
마종준영업이사)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견해다.

포스코경영연구소(POSRI)는 하반기중 국내 조강소비 증가율이 2.1%에
그쳐 상반기(12.4%)보다 크게 꺾일 것이란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래저래 철강업계의 불안감은 더해 가고만 있다.

< 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