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아산만공장.

연초만 해도 시원하게 달릴 수 있던 공장내 도로가 이제는 차량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막혀 있다.

생산은 됐지만 "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차량들이 길을 막고 있는 것.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출고장으로 넘기면 되겠지만 이미 그곳도
포화상태가 돼 공장내 도로를 "무단점거"하고 있다.

"더이상 쌓아놓을 곳이 없어 마침내 생산을 줄여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기아자동차 L전무)

기아만 그런게 아니다.

현대 울산공장, 대우 부평공장도 판매부진으로 공장안은 온통 자동차로
꽉 차 있다.

생산 자재를 싣고 온 트럭들이 곡예운전을 해야 할 판이다.

재고가 쌓이고 있는 것은 수출도 시원치 않지만 무엇보다 내수가
부진하기 때문.

각 업체들의 내수판매는 7월부터 급격히 줄어들면서 8월에는 전년대비
6%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상반기 적자폭을 줄이는데 큰 기여를 했던 "효자차종"들의
매기가 뚝 끊긴 것이다.

현대 쏘나타III, 기아 크레도스, 대우 프린스가 그런 차종이다.

공장내 도로를 점거하고 있는 차종도 이들 중형차가 주류를 이룬다.

일부 업체는 단일 차종의 재고가 1만대를 육박했을 정도다.

계약후 출고까지 두세달을 기다려야 했던 상황은 이미 옛이야기가
돼 버렸다.

기아자동차 판매계획실담당 박정림이사는 "중형승용차 판매가 급격히
줄고 있다는 것은 경기부진이 장기화될 조짐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시적인 판매부진이 아니라는 얘기다.

내수시장에서 "효자차종"들이 팔리지 않으면 자동차업계의 올해 적자는
불을 보듯 뻔하다.

수출도 마찬가지.

상반기 수출실적이 부진했던 현대자동차는 최근 해외영업본부의
지역담당자들을 모두 출장길로 내몰았다.

대리점을 독려해 수출주문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간신히 9월까지의 신용장은 받아놓았으나 10월부터가 막막하다"
(현대자동차 수출계획실장 이형근이사)는 한숨도 나오고 있다.

대리점들에 현지광고까지 지원해주고 모든 인센티브를 풀었는데도
그 모양이다.

거기에다 내수 부진으로 생산물량을 수출로 돌려야 하는 상황은
밤잠까지 설치게 만들고 있다.

통상산업부 재정경제원은 돌아가면서 수출확대회의를 갖자고 업계
수출담당 임원들을 불러댄다.

그러나 수출담당 임원들의 전화는 내려놓아진지 오래다.

대책이 없는데 회의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다.

그러다보니 공장의 가동률은 한참 좋을때에 비해 이미 10%정도
낮아졌다.

일부 라인의 경우 20%나 떨어진 곳도 있다.

이쯤되면 경영에 비상이 걸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대우자동차 양재신사장은 최근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하면서 "일반
사무직 임금을 소폭 인상에 그칠 예정이니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연말께부터 신차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경기가 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는 마당에 신차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아자동차 김영귀사장도 "원가절감운동인 PI-333운동에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상반기에 기아그룹 계열사중 유일하게 전년대비 마이너스성장을
보인 아시아자동차나 3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쌍용자동차도
"허리띠 졸라매기"에 주력하고 있다.

당분간 그 방법말고는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 김정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