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경기는 하반기 들어 표면적으로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긴 하다.

7월 현재 NCC(나프타분해공장) 가동률은 98%로 전년(99%) 수준을
회복했고 계열공장 가동률도 86%로 전년(90%) 못지 않다.

에틸렌 생산량은 33만t으로 지난해와 같고 계열제품은 82만t을 생산,6%가
늘었다.

"공장을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이렇게 잘 돌아가는데 왜 불황이냐고들
해요.

그러나 가동률만 높으면 뭐합니까.

속은 모두 곪아있는데"(LG화학 여천공장 이동찬부장)

이부장은 "왜 속이 곪았느냐"는 물음에 "국제가에 울고 웃는게
유화업계죠"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는 무슨 대책이 없느냐는 질문에 "상반기에 겨우 겨우
흑자를 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경비절감운동에
나서고 있긴 하나 NCC업체가 원가를 줄여야 얼마나 줄이겠느냐"며
반문한다.

이 회사 C과장은 유화제품 수출침체가 1년이상 지속되면서 "이대로
장기화되면 어쩌나"하는 우려가 사내에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공장에서 만난 현장근로자 K씨는 "대부분 업체가 올해는 적자를
기록해 특별상여금은 꿈도 못 꿀 형편이라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물건이 없어 못 팔던" 유화업계가 이렇게
깊은 시름에 빠져있다.

유화업종의 침체는 "중국 수요가 살아날 기미가 없는데다 국제가격이
오를 요인도 생겨나지 않은게 주요인이다"(석유화학공업협회 박훈상무)

국제가격이 여전히 지난해의 70%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것을 보면
유화업계의 "속앓이"를 실감할 수 있다.

작년 5월 한때 t당 1천달러를 넘었던 HDPE(고밀도폴리에틸렌)는 아직도
8백달러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1천1백달러에도 없어 못 팔았던 LDPE(저밀도폴리에틸렌)는
8백20달러짜리를 사는 이가 안 나서는 상태다.

PVC의 경우도 다를 게 없다.

1천1백50달러에 거래되던 게 아직까지 7백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황금알을 낳는 백색가루"로 불렸던 TPA(테레프탈산)는
올초엔 t당 1천1백만달러까지 올랐지만 5백달러 이하로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가 됐을 정도로 가격이 급락했다.

삼성석유화학은 지난 3월 공장을 꺼가면서까지 물량조절을 하는등
안간힘을 써봤지만 결국 상반기엔 10년만에 첫 적자를 보고 말았다.

"공장을 무작정 끌 수도 없고 공장을 돌려 생산해도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게 돼있다"(삼성석유화학 L부장)

주요 합성수지의 경우 상반기 수출이 작년 보다 12.1%가 늘었지만
금액기준으로 11.3%가 오히려 감소했다.

이대로 가다간 올 수출을 20~30% 늘려도 업계 전체로 62억달러를
넘기가 어렵다는 비관론이 우세하다.

대책은 있나.

국제가가 문제인 한 메이저가 아니면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

그저 기다릴 수 밖에.예의 LG를 비롯 대부분의 유화업체가 "회식때
2차가지 않기, 잔반 남기지 않기"등 기본적인 긴축운동에 나선 건 뚜렷한
대안이 없어서다.

그래서 "미리 요점을 메모해 통화함으로써 전화비를 최소로 줄이고
회사일로 시내에 나갈 땐 택시이용을 자제하는 등 1원이라도 아끼려는
자세로 낭비요인을 없애가는 방법이 이럴때 일수록 중요하다"(삼성종합화학
임종태재무팀장)는 유화업계의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겨울 나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