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이 6일 30대그룹 기조실장회의에서 고임금 해소를 위한 노동법 개정
방안등을 강도 높게 논의키로 한 것은 재계가 공동으로 임금인상 억제에
팔을 걷어 부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그동안 정치.사회적 분위기에 밀려 근로자들과 "보이지 않는 타협"을
해온데 그쳐온 재계가 임금인상 억제를 위해 이번엔 공동전선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재계가 ''고임금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으로 볼수 있다.

재계의 이같은 적극적 대응은 "이대론 더이상 안된다"는 위기감에서 비롯
됐다고 볼 수 있다.

대만 싱가포르등 경쟁국 수준을 이미 뛰어 넘은데다 일부 업종에선 선진국
수준에 육박하고 있는 높은 임금으론 최근의 경제불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공통인식이 출발점인 셈이다.

따라서 이달중 결론이 날 예정인 노개위의 "노동법 개정방안"에 임금안정을
위한 재계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자는 "압박용"이라고도 풀이할 수 있다.

재계는 한국경제의 고질적 병폐인 고비용 구조중 핵심은 고임금이란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87년 이후 매년 15%이상씩 올라간 제조업 근로자 임금을
그대로 나두고는 경쟁력 강화는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 정도의 임금인상률을 유지하고선 불황타개는 물론 선진국
진입 자체가 어렵다는 위기감이 팽배한게 사실이다.

"자동차 중공업등 주요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생산직 근로자의 연봉이 이미
3만5천달러에 달해 있다. 이는 일본 미국등 선진 메이커의 임금수준과
맞먹는 것이다. 근로자들의 생산성은 선진국의 3분의 2수준인데 이미 임금이
이 정도에 도달했으니 기업이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H그룹 P이사)
는 푸념도 마찬가지다.

재계는 이같은 한국의 고임금은 무엇보다 회사측의 교섭력 약화에서 비롯
됐다는게 기본 시각이다.

향후 노동법 개정이 회사측의 교섭력 강화에 초점 맞춰져야 한다는 재계의
주문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파업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으라는 정부와 임금을 올리지 않으면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노조 사이에서 회사측은 제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전경련
관계자)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재계는 회사가 노조측과 대등한 입장에서 임금협상을 벌일 수 있는
입지를 구축해 달라고 주장한다.

회사측의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론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등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또 노동쟁의조정법에 규정된 파업요건도 강화해 달라고 요청한다.

"한국에선 노조원의 과반수만 찬성하면 파업에 들어갈 수 있다. 유럽
선진국들이 파업결의의 경우 노조원 3분의 2 찬성, 파업중단은 과반수
찬성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은 파업요건이 너무 약하다.
회사측이 노조의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에 밀릴 수 밖에 없게 돼 있다"
(D그룹 관계자)는 것이다.

재계는 따라서 <>한계 사업정리 <>비용 절감등 "거품 제거"엔 기업이
솔선수범할테니 임금억제 만큼은 정부가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한다고 지적
한다.

또 근로자들에게도 현재의 경제위기 타개를 위해 조금만 자제해 달라는
당부도 빠뜨리지 않고 있다.

최근 국내 기업들의 경쟁적인 명예퇴직 도입등에서 알 수 있듯이 고임금의
피해자는 근로자들도 예외가 아니란 인식을 근로자들 스스로 해주길 기대
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에 재계가 요구한 임금안정을 위한 노동법 개정방안이 실제
얼마나 반영될지 여부는 노개위의 합의와 정부의 결단에 달린 셈이다.

그래서 재계는 오는 17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를 열어 기조실장회의에서
논의된 임금안정 방안을 공식 확정해 재차 강조한다는 계획이다.

<차병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