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 서울시립대 교수/환경공학 >

우리나라에서 현대식 폐수처리를 시작한지 약 25년이 지났다.

여기서 "폐수"라 함은 광의적으로 생활하수 분뇨 산업폐수 등 처리대상이
되는 더러운 물을 총괄하여 가리키는데, 그 한 세대의 기간중 그런 더러운
물들을 맑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무척 많은 "처리장"을 건설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뿐 앞으로 엄청나게 더 많은 처리장을 건설하고,
건설하는 것 못지 않게 그것들을 정성스레 운전해야만 비로소 5대강과
연안의 수질을 맑게할 수 있다.

1980년대 전반기까지의 처리장건설은 재원을 주로 외국차관에 의존했었다.

기술과 주요기계를 차관공여국으로부터 지원받으면서 처리장을 건설해
나갔다.

그런데 차관사업은 우리가 기술을 이전받는 이점이 있었지만 폐단도
있었다.

가장 큰 폐단은 현실에 맞지 않는 설계와 기계의 과잉설치였다.

예컨대 청계하수처리장과 중랑하수처리장은 모두 유입하수의 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 농도는 설계치가 l당 200mg이었지만 실제로는 지금도 l당 120mg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청계하수처리장에 설치됐던 4대의 파쇄기는 대당가격이 10만달러를 넘는
것이었지만 유입하수중의 비닐조각들 때문에 처음부터 고장이 난 채
무용지물이 됐었다.

마찬가지로 초기에 건설됐던 서울의 서부와 동부, 그리고 부산의 하단 등
세곳 분뇨처리장의 습식산화플랜트도 처음부터, 그리고 감가상각기간
이 끝날 때까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었다.

특허명칭 ZimPro의 경우는 그 채택여부에 관한 관계부서의 심사가 있기
전에 그것으로 결정하도록 이미 고위층으로부터 사실상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1995년말 현재로 전국 63개 도시에 합계 71개의
하수종말처리장이 가동중에 있다.

합계처리용량은 약 965만입방m이며, 2,088만명분 또는 총인구의 45%분을
처리할수 있다.

정부는 이 45%를 우리나라의 하수처리보급률로 홍보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여기서 그리고 그전에 우리가 주의깊게 살펴야 할 것이 하수관거의
보급률이다.

정부자료에 의하면 하수관거의 보급률이 1994년말 현재로 31.6%인데,
그나마도 시공및 유지상태가 부실하여 발생하수를 적절하게 운반하지
못하고 있다.

처리장 유입하수의 BOD농도가 l당 120mg밖에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발생하는 하수의 인구대비 처리율은 단순계산할 때 45%의 200분의
120인 27%가 되어야 옳다.

그간 우리는 하수관이 없는 하수처리장을 건설해 왔다.

이렇듯 사업이 역순으로 추진되어온 주요 원인중의 하나는 사업우선순위의
결정이 공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92년부터 정부출연 G7환경공학기술개발사업이 있기
전까지 폐수처리분야의 기술개발이 전무하였다.

경쟁력이 있는 전문기업도 없었다.

그 까닭은 국내환경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재벌급 기업체들이 자체기술의
육성보다도 손쉬운 외국기술도입에 의한 단기적 이윤추구에만 진력해 왔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출연연구소들도 지나친 행정뒷받침형 운영, 단기성과의 요구,
빈번한 기구통폐합과 불안정한 연구원신분, 영세한 예산 등의 이유로
기술개발에 기여하지 못했다.

대학들의 경우도 지원기관으로부터의 연구비가 적은 것에 더하여 연구기간
도 흔히 1년이었으므로 3년내지 5년의 기간이 소요되는 실용기술개발은
엄두도 낼수 없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실패한 연구는 인정을 못받고 문책대상이 되므로
"성과"를 주장하는 그 많은 연구논문들이 하나도 실용화되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들이 이어져 왔다.

21세기에 우리가 수행해야 할 도시하수도및 폐수처리에 관한 정책은
20세기에 못다한 숙제를 완수하는 한편에서 21세기의 새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첫째 하수관거의 보급률을 확대해야 하고, 둘째 처리장의 보급률을
관거보급률과 병행시켜 확대해야 한다.

셋째로는 도시하수도가 지금처럼 버리는 물을 제한없이 받아서 처리하는
관례에서 벗어나 물소비자체를 억제할수 있는 기능을창출하는 과제다.

마치 폐기물정책이 폐기물 발생억제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과 비슷한
논리이다.

넷째는 지역사회의 물자족을 유도할수 있는 물순환형 상하수도시스템의
건설이다.

다섯째는 환경복원과 함께 거대과밀한 도시에서 피곤하게 산업화 사회를
살아가는 도시민들에게 자연의 풍요로움과 정서적 안정을 주기 위하여
친수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기술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것으로 생각한다.

첫째 에너지절약형 처리공정을 개발해야 하고, 둘째 면적과 공간절약형
처리장을 건설해야 한다.

셋째는 발생현장에서의 처리(on-site treatment)이다.

현재에도 공장폐수는 공장내에서 처리하고 있고 호텔 등 사업성 건물들도
차츰 중수도를 사용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현장처리를 각 아파트
단지뿐만 아니라 독립가옥에까지 확대하자는 것이다.

그럴 경우 하수거를 개수로로 전환하고 그 안에 맑은 물이 흐르는
친수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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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우리나라 환경엔지니어링분야의 개척자인 김동민교수(서울시립대
환경공학과)가 7일 오후 시립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정년퇴임식에서 행한
"폐수처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의 고별강의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