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시대를 맞이하여 외국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났지만
막상 서울에서 3~4시간 거리에 있는 평양을 방문할 기회를 가진 사람은
무척 드물다.

이런 점에서 1992년 9월1일부터 6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에 참석했던 20명의 여성들은 그당시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비록 6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김일성대학 교수,
오페라가수, 평양산원 원장,기자등 북한의 여성지도자들을 만나 통일에
대해 토론하고 북한 여성의 생활을 살펴보고 금강산 구경까지 하고
돌아오니 북한에 대해 막연했던 느낌이 상당히 구체적이 되었고 남북
여성간의 교류를 지속적으로 성사시켜서 민족의 화합과 통일에 기여하고
또한 통일이후 여성 지위향상에 대비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겨났다.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한국위원회는 이우정 전국회의원,
이효재 윤정옥 교수, 한명숙 전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윤영애
한국교회여성연합회총무, 통일문제연구가인 김윤옥선생, 그리고 필자 등
평양에 갔다온 분들이 중심이 되어 두달에 한번 정도 만나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은 단순한 친목모임이 아니라 서울에서 또다시 토론회를
개최하여 남북 여성의 만남의 장을 성사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다음에 만나면 제주도에서부터 만나 한라산의 흙과 백두산에서 가지고
온 흙을 결혼시켜서 우리의 통일 염원을 담아보자는 계획도 가지고 있지만
몇년동안 남북한 관계가 경색되어 언제나 우리의 계획이 빛을 볼 수
있을지 한숨을 쉬기도 한다.

더구나 작년부터 북한의 수재로 북한주민들의 고통이 극심하다는 소식은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으며 수재가 난 직후 누구보다도 먼저
수재의연금 모금을 벌여서 적십자사에 전달하기도 했다.

21세기를 잘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사랑은 자식들의 모든 잘못을 감싸고 자식들이 화해하기를
갈망한다.

이런 어머니의 마음으로 우리 모임은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한 작은 실천을 하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