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목 우방그룹회장은 대구에서 가장 "알아주는" 기업인중 한사람이다.

이곳출신의 걸출한 기업인들이 재계곳곳에 포진하고 있지만 그가 업을
일으킨 대구의 지역사회를 위해 발벗고 뛰는 일이라면 이회장을 따를 사람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주택전문업체로 명성을 얻을 만큼 기업을
키웠으나 여전히 "대구본사"를 고집하고 있다.

바쁜 틈에도 이회장은 만학의 정열로 지난달엔 효성가톨릭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호그룹 이순국회장과 함께 형제기업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이회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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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추창근 < 사회2부장 > ]

-연초 우성건설의 부도에 이어 최근 건영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등 주택
경기가 최악입니다.

<> 이회장 =대구에서 비슷한 시기에 주택건설업을 시작한 건영의 불운이
남의 일 같지않아 착잡한 심정입니다.

주택경기가 앞으로도 별로 호전될 것 같지 않은게 더 문제지요.

주택보급률이 높아졌고 1만달러 소득시대로 접어들면서 주택에 대한 인식이
삶의 질 향상에 비례하는 "주거의 대상"으로 바뀌고 있어 과거와 같은 주택
붐은 기대하기 어려워요.

앞으로도 쓰러지는 주택업체가 더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우방은 어떻습니까.

<> 이회장 =우방은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에 맞는 다양한 품질의 주택을
공급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요즘 불경기라고 하지만 오히려 주택사업을 하기에는 좋은 점도 있습니다.

불경기 때는 자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양질의 노동력을 공급
받기도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판매부진인데 우방아파트는 좋은 입지에 양질의 아파트를 짓는다는
원칙을 지켜오면서 그동안 좋은 이미지를 가꿔왔습니다.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다른 아파트에 비해 잘 팔리게 할 수 있는 자신이
있어요.

주택붐이 일면 경쟁적으로 사업이 전개되면서 계획대로 공사를 진행하기
어렵고 주택품질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신도시 등 수도권에서 전세값이 폭등하고 매매가가 들먹이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입니다.

앞으로 주택경기를 어떻게 봅니까.

<> 이회장 =주택사이클에 따른 겁니다.

원래 주택유효수요가 바닥나면 집값이 안정세를 보여 전세선호 경향이
나타납니다.

집을 사기보다는 전세들고 남는 자금으로 재테크하려는 사람이 많아지지요.

지난 89년 주택파동을 겪고난 이후 신도시개발로 유효수요자가 소화됐고
집값이 오랫동안 안정세를 보였습니다.

집값이 오랫동안 안정되면서 전세수요는 계속 늘고 상대적으로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전세값이 올라가지요.

그러나 전세값이 대략 집값의 70%이상 수준으로 올라가면 전세살기보다는
차라리 돈을 조금 더 보태 집을 사겠다는 수요가 발생하고, 이들이 주택
구매를 시작하면서 집값이 오르는게 주택사이클의 특성입니다.

이같은 맥락에서 곧 집값이 움직일 것으로 예측되기는 하지만 예전같은
"파동"의 우려는 없다고 봐요.

89년의 경우 물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나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미분양주택도 많고 주택전산망도 잘 가동되고 있고요.

-내년 1월이면 공공부문 건설시장이 개방됩니다.

선진 건설업체들의 안방공략에 맞서 국내기업들이 경쟁할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요.

<> 이회장 =시장개방이 되더라도 별로 비관적이지는 않아요.

우선 국내 건설시장 규모가 앞으로도 계속 커질 것이고 공사의 원가구성면
에서 우리가 외국업체에 비해 뒤질게 없기 때문입니다.

건설수요는 국민소득이 3만달러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계속 늘게 돼
있습니다.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시설(SOC) 수요가 많고 계속해서 국토개발사업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국내 건설업체가 기술이나 장비에서 외국기업에 비해 취약한건 사실
이지만 인건비나 간접비용 등 원가측면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고 있어요.

문제는 그들이 갖고 있는 앞선 기술과 합리적인 경영 노하우를 얼마나
빨리 습득하느냐인데 시장개방이 오히려 그것을 촉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해외에서 성가를 높이고 있는 한국건설이 시장개방이 되더라도 쉽게 안방을
내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방은 주택전문건설업체로 커 왔습니다.

주택부문은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성장이 어렵다는게 대체적인 전망인데,
토목분야의 육성이나 사업다각화계획은 없는지요.

<> 이회장 =주택산업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과거엔 주택의 대량 생산-공급이 가능했지만 그런 시대는 갔습니다.

소득및 주거수준의 향상으로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이 다양해지면서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가 온 것이지요.

주택분야는 이같은 흐름 변화에 맞춰 강점을 살려 나갈 생각입니다.

이와 함께 토목분야 강화를 통해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수주경쟁력을
높이는데도 주안점을 두고 있어요.

레저 식품 유통사업분야로의 다각화도 진전되고 있습니다.

레저산업의 경우 제주도와 경북 영덕지구에 각각 80만평과 40만평의 레저
단지를 확보했는데 내년이면 기본설계가 확정돼 밑그림이 나올 예정입니다.

또 대구 우방랜드에 5백억~6백억원의 자금을 새로 투자, 워터파크(Water
Park)등을 만들어볼 계획이고요.

식품산업의 경우 우방과학을 통해 기능성 식품을 생산하는데 주력할 겁니다.

일본 미국 등 선진국에 닭고기 등을 수출하고 있고 또 아이디어 상품을
많이 개발했습니다.

새로 유통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새로운 유통업태에
대해 현장조사를 진행중입니다.

소득증대와 함께 소비행태가 변화하는데 초점을 맞춘 신업태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해외사업에는 별로 신경을 써오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 이회장 =저는 보수적 성격을 가져서인지 모르겠지만 건설업체가 해외
에서 사업을 벌이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내나라 국토개발을 위해 할 일도 많은데 그 정력과 자금을 해외에
쏟는다는게 어쩐지 내키지 않았어요.

그러나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해외사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최근 북경에서 주택사업을 벌인게 있습니다.

얼마전 베트남에 지사를 설립했다가 여건이 좋지 않아 철수했지만
말레이시아 등 다른 동남아지역과 미국 등지에서 적극 사업을 전개해볼
생각입니다.

동남아시장에선 사회간접자본시설 건설시장이 유망하고 미국의 경우 주택
틈새시장에 적극 참여할 계획입니다.

-지금 수출도 안되고 무역수지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과소비가 심화되는 등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습니다.

경제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 이회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경기사이클로 볼게 아니라 구조적인 요인에서 온
것입니다.

선진국이 안돼 있으면서도 소비수준은 선진국을 능가하고 있는 것부터가
문제예요.

우리가 내다 파는 제품중 선진국 수준의 기술경쟁력이나 독창성을 갖고
있는 상품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팔아먹는 고유기술 지식산업이 있습니까?

"소비가 미덕이다"는 말은 기술경쟁력 산업경쟁력을 갖춘 선진국에서나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지금 흥청망청하는 거품을 없애지 않고는 정말 어려울 때가 오리라고 봐요.

"제2의 브라질"로 추락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고유의 역사와 전통, 국민의 저력이 있어 그정도까지 가지야
않겠지만 지금 분위기를 일신해서 한 단계 올라서면 선진국이 될 수 있고
잘못하면 주저앉고 마는 것입니다.

-대구의 3대 부도사건으로 일컬어지는 광명주택, 대구타워, 정화여중.
고재단을 모두 인수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 이회장 =기업인이 회사를 도산시키는 것은 사회악을 저지르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종업원은 물론 소비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기 때문이지요.

우방그룹은 광명주택, 정화여중.고, 대구타워 등 3개 부실기업과 육영재단
을 인수, 모두 정상화시켰습니다.

이들의 부도사건으로 대구지역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였지요.

이들을 정상화시켜 기업이 사회에서 제구실을 하도록 했고 근로자 협력
업체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았다는 점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국내 경제계에서는 부실기업 인수때마다 항상 특혜시비가 있어 왔는데요.

<> 이회장 =과거 고속 경제성장 과정에서 도산하는 기업은 어떻게든 살려
내야 하는게 급선무였지요.

정당한 M&A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때가 많았고 또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
에 의해 정부가 부실기업의 인수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샀다고 봅니다.

그러나 정당하게 부실기업을 인수해서 정상화시킨 공로에 대해서는 사회가
인정해 줘야 합니다.

저는 부실기업 인수측면에서 본다면 운이 좋은 경우라고 생각해요.

대구의 랜드마크이기도 한 대구타워 같은 건축물을 우방이 지었다는 것은
대구시민이 다 알고 있습니다.

우방의 업적과 흔적이 역사속에 남은 거지요.

우방그룹이 백년후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대구타워는 그 이후에도 남아
있을 테니까요.

-실제인 신호그룹의 이순국회장과는 자주 만나 경영에 관한 의견을
나누시는지요.

<> 이회장 =동생과는 의견을 많이 나누는 편입니다.

우방과 신호그룹은 서로 하고 있는 업종이 판이하게 달라 서로 생각하기
어려운 새로운 시각에서 사안을 볼 수가 있어 도움이 많이 되지요.

옛 말에 집안에서 한 사람이 망하면 온 집안이 망한다고 하지요.

동생과 사업에 뛰어든 시기가 비슷한데 당시에 업종을 달리해 한 사람이
실패했다고 해서 집안이 온통 망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자는 원칙을
세웠었습니다.

-기업활동에 바쁘신 와중에 2001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유치위원장과
2002년 월드컵 대구유치위원회 위원장의 중책을 잇따라 맡게 되셨는데요.

<> 이회장 =도시가 발전하려면 세계적인 이벤트의 유치는 필수적입니다.

월드컵과 유니버시아드대회를 반드시 대구에 유치해 오는 21세기에는
대구.경북지역이 국제도시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국내외 체육계에서 영향력이 큰 대구.경북출신의 인사들과 자문위원들
에게도 유치협조를 부탁할 계획입니다.

-경영학박사학위는 어떻게 받게 되신 겁니까.

또 대구경북경영학회에서 경영대상도 수상하셨다면서요.

경사가 겹쳤습니다.

<> 이회장 =제가 구미전문대학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교수 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는데 늦게라도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고 경영자로서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책을 펴놓을 수도 없고 해서 고생좀
했는데 과정을 마치고 나니 뿌듯한 느낌입니다.

또 대구경북경영학회의 경영대상을 받은 것도 기업인의 역할뿐 아니라 사회
문화 체육 등 사회전반에 기여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기업이익
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최근에야 골프에 입문하셨다면서요.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 이회장 =지난 5월부터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골프를 하지 않은 건 시간이 너무 많이 드는 운동이라는 생각 때문
이었어요.

평생 골프를 치지 않고 사업을 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뒤늦게 손을 댔지요.

사실 그동안 골프와 담을 쌓고 지내면서 오해도 많이 샀습니다.

모임에 나가면 대화가 안통하기도 하고 동업자들과 골프회동을 할 경우
골프를 안친다고 무조건 안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런데 제가 운동신경이 있어 며칠전에는 벌써 1백타를 깼어요.

< 정리=방형국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