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일터를 떠나 여행을 다녀오는 것처럼 즐거운 일은 없다.

더욱이 해외여행은 바깥 세상의 문물을 접할수 있다는 점에서 가슴설레게
한다.

경제의 국제화와 개방화가 진전되고 소득이 늘어나면서 해외여행 수요가
증가하는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여름휴가철인 지난 7월과 8월 해외여행경비로 지급한 돈이 7월에
7억7,000만달러, 8월에 7억8,000만달러로 두달동안에 15억5,000만달러에
달했다.

이는 95년 7,8월 두달동안에 지급한 13억420만달러보다 18.9%나
늘어난 것이고 월별 여행경비가 7억달러를 넘어선 것도 사상 처음이다.

해외여행경비가 크게 늘어난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이
사용한 돈은 7,8월 두달간 9억410만달러로 95년 동기의 8억9,700만달러와
거의 같은 수준에 불과했다.

해외여행수지는 91년부터 적자를 나타내기 시작, 매년 그 규모가
커져왔고 94년부터는 경상수지 적자폭을 확대하는데 큰 몫을 했다.

94년의 해외여행수지 적자규모는 11억7,000만달러, 95년에는
12억2,000만달러를 기록했고 올들어 8월까지 적자누계는 18억1,300만달러
(여행경비지급 51억6,700만달러, 수입 33억5,4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32%나 늘어났다.

비록 해외여행수지 적자폭이 확대된다 해도 여행 그 자체를 억제할수는
없다.

일부 몰지각한 보신관광과 무분별한 여행이 말썽이 되고 있지만 필요한
여행, 건전한 여행까지 싸잡아 나무랄수는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어떤 행동 어떤 일에서든 절제하지 못하면 탈이 생기는 법이다.

어디로 여행을 하건 여행자 스스로가 판다해서 할 일이지만 어디서든
큰 소리로 고함지르고 기본 예의도 지키지 않는 한국손님은 싫다는 외국의
호텔이 늘어나고 있고 싹쓸이 쇼핑등 잘못된 행태가 외국에 비쳐지고 있다면
이는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을 외국에 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해외여행은 비록 국제수지 흑자폭이 늘어나도 삼가야 옳다.

지금은 경제가 어려운 때이다.

경제규모가 커졌다 해도 무역적자는 크게 늘어나고 있고 외채도
쌓여만간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외화가 귀한건 마찬가지다.

경제가 어려울 때에 필요한 것은 국민적 각성이다.

씀씀이에 낭비요인은 없는가를 살피는 일은 물론이고 분별없는
해외여행을 자제하는 국민적 슬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신혼여행 효도관광 피서여행지가 꼭 외국이어야 한다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다가오는 추석절엔 해외로 떠나는 비행기표가 매진되었다고 한다.

내년 설 명절때의 비행기표도 미리 사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여행을 규제할수도 없고 또 규제해서도 안된다.

국력이 커지면 국제공항이 붐비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는 사람만 붐비고 국내로 들어오는 사람은 줄어든다면
이건 분명 심각한 일이다.

국내 관광지의 터무니 없이 비싼 요금과 질낮은 서비스는 국내관광객은
물론 외국관광객을 끌어들일수 없다.

이점을 인식하지 않고 여행수지 적타령만 할수는 없다.

해외여행 다녀온 것을 신분상승의 징표처럼 여기는 천민적 사고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게 국민적 성숙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