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촌락의 풍속을 잘 그렸던 조선후기의 화가 혜원 신윤복의 그림
가운데 "주막도"라는 것이 있다.

술국을 먹으러 온 한량들의 모습과 극이 끓고 있는 솥 앞에 앉아
국자로 국을 뜨고 있는 주모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묘사된 그림이다.

역시 조선후기에 나온 "해동죽지"라는 책에는 "효종갱"즉 "새벽종이
울릴때 먹는 국"이라 하여 광주에서 전날 하루종일 푹고은 해장국을
담은 항아리를 솜에 싸서 서울의 재상집에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무렵
재상집에 닿는다는 해장국에 관련된 풍속이 적혀 있다.

해장국으로 유명했던 광주의 군수가 재상의 건강을 위해 보낸 뇌물성
진상품이었던 모양인데, 배추속대 콩나물 송이버섯 표고보섯 쇠갈비
해삼 전복을 넣고 고았다는 것을 보면 아마 이것이 최고급 해장국이
아니었나 싶다.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분명히 해장국이 있었지만 조리서에는
이상스럽게도 해장국과 같은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고려말의 중국어 회화교본인 "노걸대"에는 육즙에 국수와 정육
천초라루 파 등을 넣은 "성주탕"이라는 음식이 나온다.

그래서 이 "성주탕"을 오늘날 해장국의 원조로 보고 있다.

"술국" "양골탕"이라고도 불렸던 해장국은 요즘도 그렇지만 해방전부터
특히 서울 청진동의 것이 유명했는데, 소의 뼈를 끓인 국물에 된장을
삼삼하게 풀어넣고 배추우거지 콩나물, 호박이나 감자를 넣고 고은
일종의 토장국이다.

요즘처럼 선지나 양을 넣지는 않았다.

언제부터 청진동이 해장국으로 유명해졌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조선왕조 500년동안 시전상인이 모여살았던 이 일대는 밤을 새워 서울로
들어오던 나무.채소장수 등 상인들로 새벽부터 북적였던 곳이다.

잡상인들의 새벽 요기거리가 술국이었으니 청진동의 해장국은 그만큼
유서가 깊다.

해장국집이 밀집해 있는 청진동일대의 도심재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상에는 고층 빌딩 20여개가 들어선다니 해장국집들은 지하로 밀려
나거나 문을 닫아야 할 운명에 처했다.

도심재개발은 도시의 대대적인 외과수술이다.

수술이 제대로 되면 도시의 미관도 아름다워지고 공간의 효율성도
높아진다.

그러나 수술이 잘못되면 도시는 죽는다.

빌딩위주의 비인간적 공간은 도시르르 파괴한다.

적절한 무질서가 도시다운 활기찬 분위기를 살린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19세기 중반 파리시장 오스망이 필라델피아를 모델로 파리를 재개발
했을때 시인 보들레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파리는 없어졌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