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이 내년 예산문제로 뒤늦게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 9일 새해 예산안에 대한 당정간 최종협의가 끝나고 언론에 발표까지된
마당에 각 지역의 숙원사업에 대한 예산배정을 놓고 내부 불만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지도부는 내년 대선을 앞둔 "선심성" 예산편성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는
데다 국회심의과정에서 야당과의 일전을 위한 "전열정비"를 해야할 시점에서
"내분"이 일어나자 크게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다.

11일 오전 열린 당무회의는 예산문제로 술렁거렸다.

당무보고 정책보고 원내보고 등이 일사천리로 끝난뒤 심정구 예결위원장이
새해 예산안에 대한 당정협의 결과를 보고하자 의원들이 불만이 이어졌다.

양정규의원이 말문을 열었다.

양의원은 "도서지역 전화가설사업을 하면서 당시 지역주민에 대한 부담금이
연체돼 이자가 엄청나게 불어났다"면서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이어 김종하의원이 낙동강수질 개선문제를 들고 나왔다.

당으로서는 "아킬레스건"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약의 "뇌관"을
건드린 것.

김의원은 "2000년까지 4천억원을 투입하면 낙동강 수질이 완전히 개선
되는 것이냐"고 따진뒤 "경남지역은 당에서 결정만하면 무조건 따라오는
"바지저고리"인 줄 아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김의원은 아예 "당 지도부에서 위천공단 지정과 관련된 낙동강 수질개선
문제에 대해 양비론을 펴고있는 것이 가장 나쁜 태도"라며 이홍구대표 등
지도부를 정면 공격했다.

김의원의 발언수위가 예상외로 높아지자 이대표가 서둘러 "그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나중에 논의하자"며 진화를 시도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발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박세직의원은 "낙동강 수질개선에 지원키로 한 1천억원이 당초 페놀사건
이후 투자키로 한 1조5천억원의 일부인지 아니면 별도지원 한다는 것인지
명확히 하라"고 가세했다.

김중위 서훈의원은 "하수처리장시설만으로는 낙동강 수질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면서 "한강과 낙동강 등 5대강 수계의 주민과 지자체가 조합을
형성한다든지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 운하를 건설한다든지 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TK 끌어안기"용으로 대구에서 발표한 위천공단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이다.

당시 "장고끝에 악수를 뒀던" 당으로서는 양비론적 태도를 취하면서
"미봉"하려 했던 상처가 다시 도진 셈이다.

문제가 커질 것으로 우려되자 이대표가 "낙동강 문제는 시간을 두고
연말까지 종합대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진정시켰으나 이번에는 지역
숙원사업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타지역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다른 지역의 사업까지 물고 늘어지는
"물귀신" 스타일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송천영 당무위원은 "광주 도심철도 이전사업에 대해서는 예산을 지원하면서
대전 한복판을 통과하는 호남선철도 이전에는 예산이 한푼도 반영되지
않았다"며 "광주나 대전이나 당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대전만 차별대우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저마다 자기 지역의 "표"를 의식한 발언이었다.

당 총재인 김영삼대통령과 이대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해왔던 당내
"화합과 결속"은 의원들의 "이해타산"에 기초한 "인기성" 발언에 힘없이
묻혀 버렸다.

이날 당무회의의 난상토론을 놓고 당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국가의 예산편성을 놓고 "나라"를 생각하기보다는 "지역"을 우선시하는
"지역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또 그동안 예산심의과정에서 제기돼왔던 문제를 당의 최고의결기구인
당무회의에서 다시 거론하는 것이 비생산적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신한국당 지도부는 이날 당무회의에서의 "분열"로 또 하나의 짐을
지게 됐다.

당내 불만을 없애고 소속의원들의 결속을 통해 국회 예산심의라는 "고비"를
넘어야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건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