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여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농업이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이 산업이 여러가지로 공익적 기여가 큼에도 불구하고 개방의 파고속에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뒤로 밀려나고 있다.

그러나 농업은 결코 ''과거의 산업''일 수 없으며 환경오염시대에 없어서는
안될 ''미래생명산업''이라는 인식이 일고 있다.

농업 전문가 및 종사자가 주축이돼서 한국농업을 지키기돼서 금년 봄에
결성한 ''한국쌀연구회''는 미래산업으로서의 한국농업을 지키기위해 남한에서
최소한 110만ha의 쌀농사는 영구히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모임을 이끌고 있는 이은웅회장(73. 서울대 명예교수. 농박)을 수원
자택으로 찾았다.

그는 수원고등농임학교(서울대 농대 전신), 미 미네소타대 대학원을
나왔다.

서울대 농대교수-학장 한국작물학회 회장 농업과학 협회장 등을 역임하고
대한민국 과학상 인촌상(학술부문) 등을 수상했다.

======================================================================

-이회장님을 뵈려고 농학관련자료를 살피다보니 엊그제(9월10일)가
서울대 농대가 90살이 된 날이더군요.

"그렇습니다.

고종이 실업분야의 고등교육을 위해 한성부 수진동(현 종로구 수송동)에다
1904년 농상공학교를 설치했지요.

그러다가 2년뒤에 농과를 독립시켜 수원에 농림학교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농림전문학교 고등농림학교 수원농림전문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서울대 농대로 이어져왔습니다"

-고등농림을 졸업하셨는데 언제 입학하셨습니까.

"5년제 이리공립농림학교를 마치고 1942년에 들어갔어요.

신학문을 한다는 기대를 갖고 갔는데 당시는 일제치하로 만주대륙진출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방되던 해에 졸업하고 예산농업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다가 49년 봄
서울대 농대에서 강의를 시작했어요.

정년퇴임 때까지 39년 11개월을 강단에 섰습니다.

아마 이 기록이 아직 깨지지 않았을 거예요"

-서울대 농대 90년 역사의 절반을 학교에서 함께 하셨는데 이 대학의
정신이랄까, 전통을 말씀하신다면.

"한마디로 구국구농이라 해야 할겁니다.

농대는 농림전문학교시절인 1918년부터 기숙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한인학생기숙사가 동쪽(동요)에 있고 일인학생기숙사가 서쪽(서요)에
있었어요.

1919년 3.1운동과 1926년 6.10만세사건 등을 거치면서 한국인 학생만의
동요생활에서 동요정신이 잉태됩니다.

육당 최남선선생이 지어준 동요가를 당시 학생들은 독일국가의 곡을
붙여 불렀습니다.

가사는 이렀습니다.

"세계문화의 첫 빛은 괭이 만든날 생겼고/단군의 헤진 흙에서 문명의
조선 나왔네/시원한 바람 팔달산/맑은 물 넘는 서호수/수고한 하로 땀
씻을 때/나날이 새론 희망 큰 만족".

유명한 수원고농 사건은 동요정신의 구체적인 분출이며 이후 농대인에게
면면이 이어져오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국농업이 현재 위기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이 높은데.

"농업종사자 뿐만이 아니라 온국민이 "구농"에 대해 한번쯤 생각을
해봐야 할 때입니다.

농업의 바탕이 없는 번영은 뿌리없는 나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볼때 대국의 흥망은 필수불가결 한 것이거니와, 공업경쟁력을
잃을 경우 그 나라 농업이 이미 쇠퇴해 있으면 그 나라는 망할 수 밖에
없어요.

또한 세계시장에서 공업적 패권이라는 것은 길게 지속되는 것이 아님은
역사적 사실이기도 합니다"

-농업이 공업보다 유장하다는 뜻인가요.

"미국 농무부에서 사용되고 있는 인장에 "Agriculture is the foundation
of Manufacture and Commerce"(농업은 제조업과 상업의 기초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Blut unt Boden"(피와 흙)이라는 말이 무게있게 쓰이고
있습니다.

농업이란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하는 한은 영원히 영위될 것입니다"

-농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 농업이 우리 국민을 충분히 부양할 수 없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쌀자급률이 94%, 보리 67%, 밀 0.3%, 옥수수 3%,
두류 9%, 서류 98%로 전체식량자급률은 29%에 불과합니다.

인구에 비해 경작지가 턱없이 부족하지요.

그렇다고 자급률이 계속 떨어지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돼요.

채소는 그 특성상 수입에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당국에서 신경을 덜 쓴다 하더라도 벼농사만은 최소한
경지규모를 110만 를 유지하자는 것입니다"

-밀 콩 옥수수 등의 수입량도 매우 큰데 벼농사만 강조하는 이유는
뭡니까.

"벼농사는 우리나라 여건에서 볼때 다른 작물에 비해 공익적역할이 더
큽니다.

첫째는 쌀은 한국민의 기본식량입니다.

식량안보차원에서 중요합니다.

둘째는 밀 옥수수수 등 다른 곡물에 비해 쌀은 한국민의 기호에 맞습니다.

셋째는 경지이용성이 높습니다.

넷째는 우리의 여름철 기후가 벼농사에 적합하고, 다섯째로는 논이 저수
및 홍수조절기능을 합니다.

여섯째는 논이 토양유실방지기능을 하며, 일곱번째로 벼농사는 수질 및
대기정화기능이 큽니다.

그밖에 벼농사는 고온기에 개기를 냉각시키는 기능이 있으며 벼농사가
그자체로 아름다운 자연공간과 녹지공간을 제공하는 역할도 합니다"

-벼농사가 국민의 기본 먹거리공급 이외에 국토보존 환경정화 자연경관
유지 등에 기여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벼농사를 평가할 때 보통 벼생산량에 가격을 곱해 연간 산출량이 얼마다
하는 식으로 계산하고 있는데 사실은 논의 저수효과 대기정화효과 등도
경제적으로 계량해봐야 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논물의 지하수함양기능만 돈으로 대충 따져봅시다.

한국벼농사의 담수기간을 약137일,하루평균 땅속으로 스며드는 물의 양을
약 19mm로 잡으면 남한 논 총면적에서 땅속으로 스며드는 물의 양은 연간
약 350억t이 됩니다.

이중에 복류수로 흘러나오는 양이 192억5,000만t이고 나머지 157억
5,000만t이 지하수로 저장된다고 보면 됩니다.

이 양은 소양강댐의 유효저수량 19억t의 8.3배에 해당되며 팔당댐원수값
53원/t의 80%수준인 42.4원을 적용하여 금액으로 환산하면 6,678억원에
이릅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벼농사가 계속되면 여름철 더위를 덜 느끼고 살 수
있습니다.

물이 증발할때 주위의 열을 함께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고온기 벼농사의 대기냉각기능도 돈으로 환산해 봅시다.

여름철 무더운날을 40일로 칩시다.

더운날 논의 수면이나 벼잎을 통해 증발되는 물의 양은 하루에 6mm로서
ha당 약 60t에 해당한다고 해요.

따라서 전국적으로는 하루 8,070t의 물이 증발되며 잠열에 의해 대기의
온도를 낮추어 줍니다.

이 잠열에 해당하는 열량을 원유가 연소할때 나오는 열량으로 환산하면
하루에 원유 543만kl에 상당합니다.

이를 원유값kl 당 89.3원(배럴당 17.8달러)로 계산하면 하루 4,108억원,
40일에 19조3,960억원입니다"

-이같은 방식으로 벼농사의 홍수조절기능, 논물의 지하수함양 기능,
대기정화기능, 토양유실방지기능, 수질정화기능 등 벼농사기간의 경제적
가치를 종합 추정하면 얼마나 됩니까.

"지난 94년 경지규모를 기준할때 30조~33조원 가량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쌀생산분은 계산에 넣지 않았습니다"

-벼농사의 이같은 엄청난 부수적인 기여 때문에 쌀산업을 지키자는
것이군요.

"그래요.

그렇지만 나는 전농토에 벼농사만 짓자는 것은 아닙니다.

벼 500만t(3,500만섬)정도의 생산기반은 고수하자는 것입니다.

인구 한사람당 연간 쌀100kg 소비로 잡고 2개월분의 여유를 두고 인구
4,500만명에 단보당 생산량을 450kg으로 하면 500만t가량 생산하려면
110만ha의 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농업을 떠나는 사람은 많아지고 농토는 도로 산업용지 등으로
계속 훼손되고 있고 지난해 벼경작 면적은 105만6,000ha인데 "논의 보존"이
110만ha 가량 지속적으로 가능 하겠습니까.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이 쌀연구회를 금년에 만들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지회도 있고 한데 규모가 가장큰 경북지회에는 800명가량이
모입니다.

현재는 농업관련 인사들이 대부분이나 앞으로 그이외분야 인사들의
참여를 유도할 계획입니다"

-외국쌀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벼농사를 도대체 어떻게 인식해야 합니까.

"우리의 쌀산업은 민족의 생존과 국가의 번영을 보장하는 생명산업이기
때문에 영원히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로마나 이집트문화는 밀의 재배와 성쇠를 같이했다고 하고 메소포타미아
문화가 망한것은 농지의 염토화였다고 합니다.

농사가 중절되어 경지가 황폐화되면 그 회복이 쉽지 않습니다"

< 대담 = 강영현 뉴스속보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