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45도를 넘나드는 한낮의 폭염이 검은 대륙을 달군다.

원유를 섭씨 300도로 데우는 보일러에서 뜨거운 수증기까지 뿜어져
나온다.

오지 가나의 남쪽끝 테마에 우뚝 솟은 정유공장이 불볕더위에 휩싸인다.

기초토목공사인 파이프 랙 공사를 위한 검은 일꾼들의 삽질도 더욱
빨라진다.

파이프를 고정시키는 연장을 달라고 외치는 한국인 반장의 목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기다렸다는듯 현지인의 복창소리가 터진다.

선경건설의 영문이니셜 ''SKEC''가 선명하게 새겨진 헬멧을 쓴 코리안이
''빨리 빨리''를 외쳐댄다.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 용광로속과 같은 더위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선경건설이 일본산 2만8,000배럴짜리 정유공장을 4만5,000배럴로 늘리기
위한 설비개보수공사에 비지땀을 쏟고 있는 것이다.

테마정유공장의 1단계 확장공사가 진행중인 현장은 토목공사로 북적대고
있다.

현지인 일꾼 70여명이 정유공장의 보일러앞에서 증설용파이프를 지탱하기
위한 랙을 설치하고 있다.

태국인 근로자 16명이 배관 철골용접및 재단등으로 가세하고 있다.

선경과 협력사에서 파견나온 12명이 작업지시를 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국내 처음으로 아프리카공사 감리에 나선 KCI의 박재용부장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내년 6월15일로 잡혀진 증설공장준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똘똘 뭉쳐 있다.

피부색깔과 언어 오지라는 벽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선경은 기초작업이 끝나는대로 대대적인 설비개보수에 들어간다.

히터2기와 에어 쿨드 교환기 6세트를 추가로 설치한다.

파이프 랙을 한단 더 높인다.

증류탑의 내부설비도 80%를 교체한다.

이들작업이 마무리되는 내년6월에는 한국의 첫 아프리카플랜트가 선보이게
되는 것이다.

선경의 활약상이 이 정도에서 끝난 것은 아니다.

굵직굵직한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내년 9월15일 완공목표로 테마에 5kg및 14.5kg들이 LPG(액화석유가스)
용기를 연 13만5,000개 생산할수 있는 공장을 건설중이다.

2단계 확장사업인 일본산 1만4,000배럴짜리 제2정유공장(RFCC) 신설
프로젝트는 선경이 노리고 있는 야심작.

한국의 석유개발공사에 해당하는 TOR와 의향서를 교환, 수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일본 치요다의 설계기술과 선경의 건설기술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제2공장은 기존공장에서 생산된 저급 벙커C유를 휘발유 등 고급품으로
만들어낸다.

내친 김에 테마에 이어 제2의 항구인 타코라디에 건설되는 화력발전소
공사도 수주하겠다고 나섰다.

증기터빈생산과 발전소설계를 각각 맡은 일본의 후지전기, 미국의
더 프릿차드사와 컨소시엄을 구성, 1차심사관문을 통과했다.

그러나 오늘의 결실이 우연히 굴러들어온 것은 아니다.

테마정유공장에서 나오는 석유류를 저장하기 위한 저유소 3기 건설
프로젝트(PPSD)는 출발부터 난항의 연속이었다.

특히 공장에서 830 나 떨어진 북쪽끝 볼가탄가현장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볼가탄가로 가는 도중에 있는 타말레에서는 쿠쿰바.

나눔바족간 전쟁이 한창이었다.

3개월에 걸친 싸움에서 2,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급기야 비상계엄까지 선포됐다.

현지인 운전수들은 옷을 벗고 부족확인을 받았다.

외국인들도 하차해 조사를 받았다.

기름탱크 건설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현장의 반장들은 짧은 영어실력으로 그저 고함만 질러댔다.

현지인 일꾼들이 반장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기만 했다.

일이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이리달 현장소장을 비롯한 선경맨들은 "노가다" 정신으로 일어섰다.

열대야가 채 가시지 않은 대지를 베개삼아 밤새도록 땀을 흘렸다.

"아프리카를 개척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공기를 2개월 앞당기게 했던
것이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같은 강인한 정신력이 테마프로젝트 수주의
원동력이 됐다.

막차로 입찰에 참여, 내로라하는 일본 유럽의 기업들을 제치고 증설공사
프로젝트를 따내는 개가를 올렸던 것이다.

선경의 가나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한국의 아프리카 첫 플랜트인 1단계 증설공장 건설만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제2정유공장 발전소에 이르는 후속 프로젝트들을 휩쓸겠다고 내심 벼르고
있다.

가나 에너지산업의 미래를 열어갈 파트너로서의 자리를 굳히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검은대륙에서 까지 세계적인 화학그룹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