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회사는 12%를 올렸지 않습니까. 우리가 생산성이 떨어집니까,
그렇다고 이익률이 낮습니까. 6% 올려 갖고는,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데
난들 어떻게 우리 노조원들을 설득할수 있겠습니까"

경기도 화성에서 자동화기계를 만드는 M사의 노조위원장은 올 6월 임금
협상에서 "경기가 안좋으니까 조금만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사측에 이렇게
말했다.

노조위원장이 말한 "이웃회사"는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사장은 결국 노조의 요구대로 12%를 인상해 주기로 하고 협상을 끝냈다.

M사가 서울 성수동에 있을때만 해도 이런 일은 없었다.

이웃에 중소기업들만 있다보니 종업원들은 자신의 임금수준이 그중 가장
높은 것을 뿌듯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2년전 공장을 확장한다고 지방으로 내려오면서 근처에 있는 대기업
이 화근이 됐다.

남동공단에서 전자부품을 만드는 S사 사장은 같은 공단내 동료사장으로부터
임금인상률이 높다는 "비난"을 받고는 이렇게 강변했다.

"모기업은 올해 임금인상률을 대외적으로 5.7%라고 발표했지만 각종 수당
신설등으로 실제 12%가 넘습니다. 이걸 우리 근로자들이 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우리만 한자리수로 묶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문제에서 다 그렇지만 임협때면 중소기업은 정말 괴롭다.

근근히 버티는 한계기업이 대부분인데 노조는 항상 대기업수준의 임금
인상률을 요구한다.

들어주자니 뱁새가 황새 쫓아 가다 가랑이가 찢어질게 뻔하고, 노조의
요구를 무시해 버리자니 유능한 인력이 떠날테고.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게 중소기업의 처지다.

중소기업들이 능력이상으로 임금인상을 하는 데는 이처럼 대기업과의 상대
비교가 있다.

이건 중소기업의 임금이 "고임이냐 아니냐"와는 별개 문제다.

실제로 지난 93년부터 95년까지 중소업체의 연평균 임금인상률은 12.2%에
달했다.

그 결과 "지난 93년 88만8천4백62원이었던 중소기업근로자 월평균임금은
94년엔 1백만원을 훌쩍 넘어섰고 95년엔 1백11만8천9백50원"(노동부통계)이
됐다.

중소기업의 임금도 이렇게 숨가쁘게 뜀박질을 계속해 왔다는 것이다.

뜀박질을 해 대기업과의 임금격차가 좁혀졌다면 그래도 괜찮다.

황새를 쫓아 가려고 가랑이를 벌려 봤지만 같은 기간중 대기업 평균
인상률은 13.2%나 됐다.

94년과 95년 이태만 보더라도 각각 14.1% 12.2%로 중소기업을 웃돌았다.

93년 1백대 1백29.4이던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임금격차는 95년 1백대
1백31.1로 더욱 커진 것이다.

임금인상률이 높았던 최근 3년은 사상 최대 부도사태와 이를 비관한
사장들의 잇단 자살등 중소업체들이 극도로 어려웠던 기간임을 감안할때
가랑이가 찢어지고 있는게 분명하다.

문제는 임금격차 확대가 이직률상승으로 이어지는등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이다.

안경업계에선 최고 수준의 임금을 자랑하는 서전의 경우도 인근 대기업보다
20%나 낮다.

이 회사 육동태총무과장은 "최근에도 반장급 3명이 이웃 대기업으로 전직
했다"며 "기술인력을 열심히 길러놓으면 훌쩍 떠나가기 일쑤"라며 허탈해
한다.

열처리업체인 반월공단의 H사도 비싼 돈을 들여 연수까지 시킨 숙련기술자
수십명이 최근 몇년새 줄줄이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물론 대기업도 할말이 있다.

"누구는 해마다 많이 올려주고 싶어서 올려주느냐. 기업에 치명타를 입히는
노사분규를 피하기 위해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S그룹 C기조실장)

"대기업에서 노사분규가 일어나면 중소협력업체가 더 타격을 받는다"
(H사 K이사)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동차 패널을 찍어내는 AP사가 지난 5월 문을 닫아 기아자동차의 생산
라인이 선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뿌리(중소기업)가 없는 대기업은 생각할수가 없다.

조립업체인 대기업의 경쟁력은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한계상황에 닥쳐 허덕이는데 어찌됐든 우리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논리는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라는게 중소기업인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고임의 벽을 깨야 합니다. 그러나 그 벽은 대기업에서부터 깨져야 합니다.
대기업의 두텁고 높은 벽을 그냥 두고 중소기업의 얇고 낮은 벽을 깨봐야
물론 깨지지도 않겠지만 깨진다해도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선광전기
서정원사장)

납품대금결제등 거래조건도 그렇지만 고임의 벽을 깨는 것도 대기업이
솔선수범해야만 된다는 지적이다.

경기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양자가 공존하려면 특히 그렇다.

< 정리=김낙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