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창전동의 이랜드 본사 주차장뜰.

일주일 예정의 "재고상품전"으로 아침부터 북새통이다.

의류업체들의 "재고떨이"야 연중행사이다시피 한 것이어서 이채로울게
없지만 이랜드의 재고상품전은 판매부서 직원이 아닌 본사직원들이 직접
판매한다는 점에서 색달랐다.

이랜드는 이번 재고상품전에 본사직원 70명을 투입했다.

지원부서 인력의 현장 전진배치다.

이랜드는 불황타개 전략의 일환으로 올들어 지금까지 3백50명의 본사직원을
판매관리부서로 발령해 본사직원을 5백명에서 1백50명으로 대폭 축소했다.

이 회사는 남아있는 1백50명의 본사직원 중에서도 50명 정도는 영업부서로
추가발령할 계획이다.

이랜드 뿐만이 아니다.

아시아자동차는 지난 4월부터 임원 5명과 부.차장급 중간관리자 27명을
포함해 모두 1백75명의 임직원을 영업현장으로 내보냈다.

기아자동차는 1백43명을 영업으로 전진배치시켰다.

코오롱그룹도 불황대책을 발표하면서 부장급 30%를 영업.수출.생산현장으로
재배치하겠다고 선언했다.

현대자동차는 상무급이하 임원들의 여비서를 모두 현업부서로 전출시켰다.

중소기업인 기영섬유는 간부급이상 임직원 가운데 사장과 기획부장만
본사에 남기고 모두 현장으로 내보냈다.

기업들이 지원부서 인력을 현장으로 전진배치하는 것은 물론 생산성 제고를
위해서다.

지원부서 인력을 줄임으로써 이런저런 비용을 절감함과 동시에 판매나
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이랜드 관계자는 본사인력을 영업일선에 배치해 다양한 "전진인센티브"를
준 결과 어떤 대리점의 경우엔 판매가 2백%나 늘어났으며 회사전체 매출도
30%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랜드가 본사인력의 추가 현장배치를 고려하는 것도 이같은 결과에 고무된
때문이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도 "여비서들을 현업에 전출시킨뒤 회사내에 비용절감의
분위기가 확산되는등 여러가지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원부서인력의 현장 전진배치에는 "나가 달라"는 메시지도 담겨져
있다.

전진배치를 인력감축의 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입사이래 경리부에서 돈만 세거나 인사부에서 인사카드만 작성하던 사람이
영업일선이나 생산현장으로 전환배치됐다고 치자.

제대로 적응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일부는 영업이나 생산이 적성에 맞아 전보다 더 의욕을 갖고 일하는
사람도 있을 수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엔 그렇지 못한게 현실이다.

의류업체 D사의 영업사원 L씨가 그런 경우다.

입사 8년간 주로 감사팀과 총무부만을 오가면서 책상에서 펜대만 굴리던
그에게 영업사원 발령은 "해고통첩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데다 붙임성도 약해 요즘 출근길이 겁난다는게
그의 하소연.

기업들도 지원인력의 현장배치에는 "인력감축"의 의도가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일선부서에 전진배치된 지원부서 사람이 새 일에 잘 적응하면 그나름대로
효과가 있는 것이고 반대로 겉돌다 회사를 그만두면 그것 또한 조직의
슬림화라는 효과를 거두는 것 아니냐"고 C사의 K인사부장은 말했다.

K부장은 "영업인력의 확충보다는 인력감축에 더 비중을 두고 지원부서
인력을 전진배치하는 기업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랜드의 경우처럼 전환배치된 사람들이 새일에 적응할 수있도록 지원해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게 그의 얘기다.

실제로 C사의 경우 전진배치된 인력중 28%가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부서인력의 전진배치를 "한국형 레이 오프(Lay-off)"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쨌든 지원부서 인력의 영업및 생산현장 전진배치는 기업들의 불황탁개
전략중 하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불황의 안개가 짙어질수록 본사의 의미는 퇴색되기 마련이다.

생산성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현장행 엑소더스"의 물결이 거세지는 이유다.

< 김정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