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요즈음처럼 공무원하길 잘 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올해로 공직생활 15년째를 맞고 있는 교육부 H서기관은 중견
시계제조업체의 부장으로 있다 최근 명예퇴직한 손아래 동서 얘기를
하다가 이렇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바닥모를 불황으로 사회전체에 "감원"의 찬바람이 불고 있는 와중에서
상대적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공무원의 수는 일의 유무나 경중에 관계없이 일정 비율로 증가한다"는
파킨슨의 법칙을 빌리지 않더라도 공무원의 신분 보장은 주지의 사실.

게다가 설령 명예퇴직을 해야할 상황에 처하더라도 산하기관에 더높은
직급으로 낙하산을 타고내려갈 수도 있다.

바로 이같은 "철의자"의 메리트 때문에 요즈음 그들의 주가는 그
어느때보다 상한가를 치고 있다.

"내년도 봉급이 동결됐다고 하는데 별로 신경쓰는 직원이 없습니다.

일반 기업체에서는 자리자체가 위태로운데 최소한 그럴 걱정은 없지
않습니까" (내무부 K국장)

"얼마전 대학동창 모임에 갔었는데 다들 저를 부러워하더군요.

주로 대기업체 부장이나 팀장으로 있는 친구들인데 "나도 너처럼
공무원이나 될걸..." 하면서 후회하는 모습을 보니 상황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더라고요" (총무처L서기관)

한마디로 "음지가 양지"로 바뀐 형국이다.

따라서 한때 더 높은 보수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위해 대기업행을
택했던 과천의 젊은 공무원들의 생각도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 여름 한 대기업으로부터 부장으로 와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전직의 두려움으로 망설였었는데 안가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을 자르는 판이니 당분간 스카우트 제의도 별로 없겠지만 설사
있더라도 이 판국에 나갈 사람이 있을까요" (통상산업부 P사무관)
이같은 사회의 변화는 대학가에도 어김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겨울 "삭풍"을 무색케 하는 기업의 감원바람, 상시채용 등으로 사상
유례없는 "바늘구멍"이 될 좁은 취업문, 이같은 주변 환경은 그들로 하여금
공무원에 더욱매력을 느끼게 하고 있다.

"중앙도서관 열람석의 70%는 고시준비생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봐야
돼요.

학생들 추정으로 서울대의 고시생이 5천명은 될거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요즈음은 문과계열 학생들은 물론 자연계 학생들도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서울대 인문대 박모군)

고시뿐아니라 7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많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