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석 <건설교통부 장관>

지난 8월31일 리비아에서는 우리업체가 건설한 대수로 2단계의 통수식과
트리폴리 중앙병원 개원식이 있었다.

본인은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현지를 방문하여 우리나라 건설업체의 세계적
인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대수로 공사는 풀 한포기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하루 40만t의 지하수를
끌어들여 1,700km나 떨어진 트리폴리에 직경 4m의 철관을 통해 물을
공급하는 금세기 최대의 토목공사이다.

트리폴리 중앙병원은 1,435개의 병상을 갖춘 아프리카 최대의 의료센터이다.

이 두 개의 거대한 토목.건축사업은 이번 리비아 혁명기념행사의 메인
이벤트였으며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바로 한국의 건설업체였다.

기념식장에서 동아와 대우를 외치는 리비아 국민들의 연호속에서 한국건설
업체에 대한 리비아 국민들의 무한한 신뢰를 엿볼수 있었다.

해외건설은 단순히 공사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영구적인 구조물을 현지국가에 세우면서 한국의 이미지를 심어 놓는다.

한국의 제품과 용역이 수출될수 있는 기반이 함께 마련되는 것이다.

우리건설업체는 65년 최초로 태국에 진출했다.

그 이후 70년대 오일쇼크를 계기로 크게 일어난 중동의 건설경기를 타고
우리업체의 본격적인 해외건설 진출이 이루어졌다.

사우디의 주베일 산업항을 비롯해서 항만.공항.고속도로, 그리고 공단과
아파트 단지에 이르기까지 우리건설업체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80년대 들어 석유값이 안정되면서 중동경기도 시들해졌고 많은 한국업체들
이 크나큰 상처를 안고 되돌아 왔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 해외건설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해외건설의 불길이 동남아로 옮겨 붙기 시작한 것이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등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동남아시아
에서는 거대한 건축.토목공사가 발주되었고 우리업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페낭대교를, 싱가포르에서는 레플즈 시티를,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는 고속도로를 닦아 명성을 떨쳤다.

지금 말레이시아에서는 92층짜리 콸라룸푸르 시티센터를 한국과 일본업체가
한동씩 수주하여 누가 더 빨리 그리고 더 완벽하게 공사를 완성하느냐에
현지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내년부터 우리나라의 건설시장도 외국에 개방된다.

그러나 우리만이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개방하면 다른나라도 개방하게 된다.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우리업체가 뚫고 들어갈수 있는 시장의 규모가 크게
늘어난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해외에 개방되고 있는 건설시장은 2,000억달러 규모
이다.

2000년이 되면 그 물량이 3,000억달러에 이르게될 전망이다.

이 물량의 10%를 우리업체가 수주하면(현재는 약 5%정도를 수주) 연간
300억달러가 되고 100억달러에 가까운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한다.

해외건설 진출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척정신, 기술과 노하우, 현지국가와의 유대관계, 그리고 금융제공
능력등 복합적인 경쟁력이 바탕되어야만 해외시장을 얻어낼수 있다.

우리 건설업체는 적어도 시공부문에서만은 세계 제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된다.

최근 대부분 국가에서는 수주업체가 공사비를 조달하는 공급자금융을
요구하고 있다.

아무리 기술능력이 뛰어나도 좋은 조건의 금융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경쟁력이 없다.

또한 많은 나라에서 지역개발과 관련된 모든 시설을 함께 발주하면서
기획에서부터 설계.시공.사후관리에 이르는 일체의 개발.관리를 맡기는
"개발형공사"가 유행이다.

단순한 시공기술보다는 기획.설계.관리등 소프트웨어적인 기술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올해는 13년만에 처음으로 해외공사 수주액이 100억달러를 넘는 해가 될
것이다.

경상수지 문제로 힘겨워하고 있는 국내경제에 새로운 활력소로 기대된다.

우리 건설업체가 안으로 내실을 다지면서 밖으로 힘차게 뻗어 나갈수
있도록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보내야 할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