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근원이 자연의 모방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는 없다.

모방은 고대 그리스 미술이후 아카데미 미술의 근간을 이루어 왔고
현대 미술에 있어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럼에도 창작과 모방의 한계를 구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술계에서 남의 작품을 모방한 일은 적지 않다.

지난 91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양화 부문 대상 작품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모 신문에서 이 작품이 일본의 사진집에 실린 프레데릭 아슈도의
흑백 누드 사진과 파올로 지올리의 컬러 누드 사진을 표절한 것이라고
특종 보도한 것에서 확산된 이 사건은 바로 그 전 해의 미술대전 한국화
부문 대상 작품이 세계적인 화가 타피에스의 그림 양식을 표절, 수상이
취소된 사건에 이어 발생한 것이어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주최측은 "수상작은 사진을 오브제로 이용, 나름대로 미묘한 회화적
뉘앙스를 덧보태 창의성이 보인 작품"이라며 표절 사실을 부정했으나
일부 평론가들은 "미학적 근거 부재 또는 오해" "표절을 넘어 지적
소유권에 대한 차원의 문제"까지 제기하며 논쟁을 벌였다.

이런 겉으로 드러난 사례 말고도 쉬쉬하고 넘어가는 것들이 많다.

문제가 있어 시비를 받아도 주최측이 공신력 때문에 어물쩡하게
넘겨버리거나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많아 몇 년후에 사건이
터지기도 한다.

이같은 미술계의 표절.모방 시비 사례는 공모전 개인전의 작품,
환경조형물, 기업의 심벌마크, 남의 글을 그대로 도용한 저작권 시비 등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럼에도 화가 조각가들이 사진을 이용하여 작품을 해오거나 작품의
소재나 기법을 전통적인 그림이나 민화의 이미지에서 차용하는 예가 많다.

이렇듯 사진이나 전통 미술에서 이미지나 기법을 차용해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현대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표현 방식이 되고 있다.

그러나 표절이나 모방은 어디까지나 재창조라는 과정을 거쳐 작품성이
분명한 경우에야 창조성을 인정 받을수 있다.

현대에는 수많은 미술 정보 속에서 많은 작가들이 서로 빠르게
영향받기 때문에 작품간에 유사성이 발견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라도 내용.이미지.소재.기법을 빌려 올수 있지만 창의성이
결여된 것은 창작이라고 할수 없다.

이같은 작품의 표절(모방 유사성)과 창작을 구별하는 감식안은
독창적인 작품을 우선시하는 컬렉션에 있어 필수적이다.

그만큼 컬렉터들은 감식안을 기르는 훈련을 많이 쌓아야 한다.

< 가나미술문화연구소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8일자).